흔들림 속에서 알게 된 나를 사랑하는 법[벗드갈 한국 블로그]

  • 동아일보

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벗드갈 몽골 출신·글로벌 비에이 유학원 대표
벗드갈 몽골 출신·글로벌 비에이 유학원 대표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지금, 나는 2025년이 내게 어떤 의미를 준 해였는지 차분히 되짚어 보고 있다. 한국에 머문 지 어느덧 16년. 10대와 20대, 그리고 30대의 시간을 모두 한국에서 보냈다는 사실이 이제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한국은 고향만큼이나 편안한 생활 터전이 됐고, 그만큼 이 땅에서 경험하고 이뤄낸 일들도 많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남들과 다르지 않게 출퇴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사회 경험을 쌓아가는 평범한 사람이 됐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10대와 20대 시절의 나를 지금의 나와 견주어 보면 생각의 깊이도 삶을 대하는 자세도 크게 달라졌다는 점이다. 연말연시 모임의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도 그 변화가 생활 속에서 드러나는 한 예일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10년 전만 해도 내가 30대와 40대를 ‘큰어른’처럼 느꼈던 이유가 떠올랐다. 왜 그런 고정관념을 갖게 되었을까 곰곰이 되짚어 보니, 그 배경에는 내가 자란 몽골의 평균 수명이 짧은 현실이 있었다. 학창 시절 중고교 학부모의 대부분이 30대였고, 심지어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던 무렵에는 20대 학부모도 흔했다. 그러니 30, 40대는 자연스럽게 ‘나이 든 어른’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몽골에서는 40대 중후반만 되어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문화적 차이가 나의 부모 역할에서도 종종 드러난다는 것이다. 큰아이는 “엄마가 젊은 게 너무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운동회나 공개수업에 참석하면 아이들 사이에서 “누구 엄마 좀 젊은데?” “우리 부모님은 40대 중후반인데?” 같은 반응이 나온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아이는 자신의 엄마가 비교적 젊은 나이인 것이 내심 기분 좋았나 보다.

다만 아이를 키우면서 느낀 점 중 하나는 한국 사회는 ‘젊은 엄마’에 대한 시선이 그리 너그럽지 않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괜찮다. 나는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도 임신과 출산, 그리고 양육까지 묵묵히 최선을 다해 왔다. 몽골에서는 젊을 때 아이를 낳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고, 나 역시 그런 문화에서 자랐기에 한국에서 받는 시선들이 어떤 의미이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한국 사람들은 어떤 상황이든 뭉칠 줄 아는 힘이 있다. 이러한 집단적 에너지는 사회 질서를 지키거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이나 정치인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힘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강한 결속력이 늘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그 흐름에서 벗어난 소수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우거나 억울한 피해를 주기도 한다.

세상이 나를 어떻게 보든, 결국 중요한 것은 내가 스스로 옳다고 믿는 생각과 흔들리지 않는 주관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이 무너질 것 같은 순간에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애쓰고 묵묵히 버티다 보면, 언젠가는 지금의 상처와 아픔이 모두 성장을 위한 발판이었음을 알게 된다.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데에는 독서의 힘도 컸지만, 가장 큰 도움이 된 것은 훌륭한 사람들의 강의와 영상이었다. 우리는 스마트폰 화면만 열면 언제든 원하는 순간에 지혜를 들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오랜 타지 생활을 통해 결국 가장 소중한 존재가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30대에 들어 깨닫기 시작했다. 이 발견 덕분에 지금은 이전보다 훨씬 감사하고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내고 있다. 과거에는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더 똑똑해 보이기 위해 애썼다. 이제 그런 철없던 시기를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다. 중요한 것은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내가 정말 되고 싶은 나 자신이 되어 가고 있는지 그 방향을 잃지 않는 일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2025년을 어떻게 보냈는지 스스로에게 조용히 질문해 보면 좋겠다. 그 답이 무엇이든, 그것을 솔직하게 마주하는 순간이 이미 변화와 성장을 향한 첫걸음일 것이다.

돌아보니 동아일보 지면을 통해 독자들과 함께한 시간도 어느덧 9년이 됐다. 10년이라는 숫자를 채우게 될지 알 수는 없지만, 그 여부와 상관없이 한 달에 한 번 쓰는 이 글이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와 용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만큼은 변함없다. 2026년을 맞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조금 더 단단해지고 성장하려는 마음일 것이다. 모두 따뜻한 성탄절과 희망과 평안이 가득한 새해를 맞이하시길 진심으로 바란다.

#한국 생활#몽골 문화#세대 차이#젊은 엄마#사회적 시선#긍정적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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