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며칠 전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새우의 상징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다. 방송을 본 지인은 “새우가 그런 뜻을 지닌 줄 몰랐다”며 흥미로워했다. 등이 굽고 긴 수염을 가진 새우는 예부터 노인을 닮았다고 여겨 ‘바다 해(海)’와 ‘늙을 로(老)’를 더한 ‘해로(海老)’, 즉 바다의 노인을 상징한다. 또 부부가 함께 늙어간다는 의미의 ‘해로(偕老)’와 발음이 같아, 옛 어해도(魚蟹圖) 병풍에는 종종 새우가 그려졌다. 부부가 오래도록 함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상징이었다.
어해도는 물고기와 게를 그린 그림이라는 뜻이지만, 넓은 의미에서 바다와 하천에 사는 수중 생물을 소재로 한 그림을 말한다. 병풍 그림으로 많이 전해지는 어해도를 보면 잉어, 붕어, 쏘가리, 메기, 미꾸라지, 송사리, 숭어, 가자미, 홍어, 게, 새우, 문어, 오징어 등이 주로 등장한다. 물고기는 한 번에 많은 알을 낳아서 다산을 상징한다. 금슬 좋은 부부를 바라는 마음으로 쌍으로 헤엄치는 물고기를 그려 넣기도 했다.
잉어는 입신출세의 의미가 담겨 있고, 쏘가리의 한자어는 궐(鱖)인데 궁궐의 궐(闕)과 발음이 같아서 신분 상승의 꿈이 담겨 있다. 게와 거북의 등껍질인 갑(甲)은 과거 급제의 갑(甲)과 연관 지어 벼슬을 의미한다. 이 외에도 어해도에 등장하는 물고기는 다양한 상징을 내포하고 있다. 19세기는 염원의 시대라고 할 정도로 입신출세, 부귀영화, 부부화합, 자손번성, 수복장수 등 사람들의 소망을 담은 길상화가 많이 제작됐다.
물고기는 눈꺼풀이 없어서 눈을 감지 않으므로 밤낮으로 경계하며 사악한 기운의 침입을 막을 수 있다고 여겼다. 이러한 이유로 장롱, 뒤주의 자물쇠를 물고기 모양으로 만들었다. 소중한 물건을 빈틈없이 지켜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투영된 것이다. 북어가 액막이로 널리 쓰인 것도 눈을 부릅뜨고 있기 때문이다. 물고기 그림을 벽장문이나 미닫이문에 붙이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몇 년 전 국내 대표 어종이던 조기, 명태, 멸치를 주제로 해양문화 특별전을 준비할 때 전시할 만한 소장품이 없어서 난처했던 적이 있다. 조선시대에 가장 많이 먹은 조기와 명태를 그린 그림을 찾을 수 없었고, 도자기나 가구 등에 그리거나 새긴 자료도 찾지 못했다. 국립민속박물관뿐만 아니라 전국의 박물관 소장품을 훑어봐도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오주연문장전산고, 난호어목지, 자산어보, 우해이어보 등 많은 문헌에서 명태, 조기, 멸치를 언급하고 있는데 왜 그림은 찾기 어려운 걸까. 조선 후기에 인기를 누린 어해도는 지금도 많이 남아 있으나 그림 속에서 조기, 명태, 멸치를 찾기는 쉽지 않다. 전어, 준치, 명태 등 한국인이 자주 먹던 물고기도 간혹 어해도에 남아 있다고 하는데 희소하다.
어해도 병풍은 사람들의 다양한 소망을 담고 있는 데다 물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물고기 모습이 유유자적한 존재를 연상케 해 조선 후기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다. 요즘으로 치면 관상용 수족관을 방에 들여놓은 셈이다. 어해도 병풍은 방 안에 두고 즐기는 일종의 수족관 역할을 했으니, 염원이 담긴 어류를 그리는 게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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