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회사 SPC와 건설회사 포스코이앤씨에서 발생한 잇단 노동자 사망 사고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이 보인 강한 개선 의지는 공감할 만하다. SPC에서는 최근 3년 동안 3명, 포스코이앤씨에서는 올해만 4명이 사망했다. 지난달 SPC 공장을 직접 찾은 이 대통령이 “한 달 월급 300만 원 받는 노동자라고 해서 그 목숨값이 300만 원은 아니다”라고 말한 부분은 적잖은 울림도 있었다. 대통령이 관심을 보이자 SPC는 강력한 개선책을 내놨다. 사후약방문이지만 그래도 진일보한 모습이었다.
사망사고 낸 기업에 ‘면허 취소’ 경고
며칠 뒤 사망 사고가 발생한 포스코이앤씨를 대하는 이 대통령의 언사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이 대통령은 “심하게 얘기하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며 “해당 기업의 주가가 폭락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엿새 뒤 다시 사고가 발생하자 이 대통령은 “건설 면허 취소, 공공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으라”고 서슬 퍼런 지시를 내렸다. 건설 면허 취소는 최고 수위의 징계로 1994년 성수대교 붕괴로 32명의 사망자를 낸 동아건설산업이 유일하다.
같은 사업장에서 연달아 사고가 발생하는 것에 대한 대통령의 분노가 이해된다. 대통령이 화를 내야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대책을 내놓을 것이라는 주장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우리가 늘 대통령만 바라볼 수는 없다. 또 건설 면허를 취소해 버리는 ‘사이다식 제재’가 근본 해결책인지도 더 따져 봐야 한다. 기업을 본보기로 처벌하겠다는 식의 접근도 위험해 보인다.
포스코그룹의 자회사인 포스코이앤씨는 국내 건설 순위 7위 대기업으로 지난해 매출 9조4687억 원을 기록했다. 직접 고용 직원 6000여 명, 도급·파견 등 간접 고용까지 합하면 2만4000여 명에 달한다. 가족까지 고려하면 최소 4만∼5만 명의 생계가 걸려 있다.
이 회사는 2022년에는 사망 사고가 없었고 2023년에는 1명뿐이었다. 포스코이앤씨보다 순위가 높은 A기업은 2022년 5명, 2024년 3명, 올해는 지금까지 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역시 규모가 더 큰 B기업은 지난해에만 7명이 사망했다. 통계 산출 기간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면허를 취소하면 10대 건설사 중 면허를 유지할 수 있는 곳은 없다.
기업이 해결 못하는 근본 문제도 있어
사망 사고를 낸 기업을 두둔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건설산업은 규모가 클뿐더러 원청과 하청, 노사 문제, 정부의 인허가 문제 등이 다층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1차원적 처벌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사망 사고를 줄이려면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정부와 기업이 함께 나서야 한다.
우선 사고를 낸 건설사 공개가 필요해 보인다. 국토교통부는 2023년 3분기까지 기업별로 사고 현황을 공개했다. 하지만 법적 근거 미비로 중단했다. 이후 지금까지 미적거리면서 시장에 ‘안전은 후순위’라는 잘못된 시그널을 보낸 측면이 있다.
공기(공사기한)를 연장시키는 사회·정치적 요인을 해결하는 데 정부가 나설 필요도 있다. 대규모 공사 현장에서 크레인 비율을 놓고 노조 간 세력 다툼으로 공사가 중단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레미콘 노조가 운송을 거부하면서 공사가 멈춘 사례도 있다. 기업들은 사태가 더 커질 것을 우려해 감히 나서지도 못한다. 이렇게 늘어난 공기를 맞추려 공사를 강행하면 사고 확률이 더 높아진다.
현장 근로자가 고령화하고 외국인 근로자가 증가하는 것도 안전에 위협이 되는 요인이다. 이런 사안들은 모두 정부의 도움 없이는 해결하기 어렵다.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이유다. 사고를 낸 기업을 제재하는 1차원적 압박과 근본 문제까지 해소하려는 고차원적 대응이 동시에 이뤄질 때 건설현장에서 안전한 일터를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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