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에서는 전화보다 엄마 목소리가 더 가깝게 들렸다. 나는 내 방 책상에 앉아, 문간에 서서, 침대에 누워 편지를 읽었다.”
드라마 ‘파친코’ 작가진으로 참여한 경력이 있는 한국계 미국인 소설가 겸 번역가의 에세이다. 저자는 미국에서 컴퓨터공학을 공부하는 아버지로 인해 미국에서 태어난다. 그러나 아버지가 좋은 조건으로 한국 회사의 스카우트를 받으면서 상황이 달라진다. 부모가 저자와 오빠만 남겨둔 채 한국으로 돌아간 것이다.
가족의 충분한 돌봄을 받지 못한 외톨이 소녀에겐 일주일에 한 번씩 엄마가 보내준 편지만이 유일한 위안이 됐다. 책에는 어머니가 저자에게 보낸 편지 10통의 사진과 저자의 가족사를 다룬 글 10편이 번갈아 나온다.
한글을 잘 모르는 딸을 위해 중간중간 괄호를 치고 영어를 적어 넣는 어머니의 섬세함이 뭉클하게 다가온다. “이모는 엄마가 우리 은지 있는 게 너무 부러운(envy)가 봐.”
반면 편지를 읽는 딸의 심정은 조금 더 복잡하다. 부모의 부재와 방치로 다친 마음과 부모의 돌봄을 갈구하는 이중적인 마음이 뒤섞여 드러난다. 외로운 청소년기에 겪었던 자살 충동과 섭식 장애를 묘사하는 덤덤한 문체가 더 마음을 저릿하게 한다. 어머니의 편지가 유일한 ‘치료제’였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결코 아니었다.
책은 개인적 아픔을 솔직히 보여주지만 개인사에만 그치지 않는다. 어머니와 할머니, 때론 그 윗대까지 확장되는 이야기 속에서 한국의 굴곡진 현대사도 드러난다. 저자의 증조할아버지는 제주4·3사건에 연루돼 돌팔매질로 죽음을 맞았다고 한다. 남편의 바람기로 평생 상처받은 삶을 살던 외할머니 이야기에서도 여성이 부당한 차별에 시달려야 했던 시대가 읽힌다. 2020년 미국에서 먼저 출간돼 워싱턴주 도서상, 퍼시픽 노스웨스트 도서상, AAAS 도서상을 받았다. 이주자의 정체성과 삶을 다룬 ‘디아스포라 문학’과 청소년기 내면의 갈등을 이겨낸 단단한 ‘자기 고백’이란 두 면모를 모두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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