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이 심각한 병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참 좋아했던 후배가 갑자기 목숨을 끊기 전까지. 평소에는 정말 유쾌한 녀석이었는데, 감정의 기복이 좀 심했다. 그때마다 “죽고 싶어요”라고 했는데, 처음에는 진지하게 들어줬지만 주기적으로 반복되자 “뭐 그런 걸 가지고 죽냐”고 타박하기도 했다. 장례식장에서 그가 평소 우울증 약을 먹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미안함과 동시에 이 병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깨닫고 소름이 돋았다.
2000년대 초반부터 ‘공적 감정(a public feelings)’을 연구해 온 저자는 ‘우울’이 단순히 개인의 심리적 문제나 병리적인 상태가 아니라 사회적·역사적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공적(公的) 감정이라고 말한다. 현재의 사회구조와 현상을 분석하는 주요 단서이자 키워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퍼블릭 필링스 연구는 9·11과 거의 동시적이었고 그 파장 속에서 진행되었다.…무엇 때문에 사람들이 부시에게 투표하거나 전쟁에 찬성하게 되었는가? 불안과 무감각이 결합하면서 만연해진 이런 정치적 결정은 일상생활의 맥락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서론’에서)
20년 넘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를 차지하고 있고, 우울증 치료를 받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면 그 원인과 치료를 더 이상 개인에게만 맡길 순 없지 않을까. 멀리 갈 것도 없다. 자신의 미래가 암울하거나 없어 보일 때 우리는 우울함을 느낀다. 취업이나 질병에도 느끼는 우울감을 국가와 사회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될 때 느끼지 못할 리가 없을 것이다.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지고, 정치지도자들은 그걸 더 부추기고, 배웠다는 사람들은 억지와 견강부회(牽强附會)로 자기편만 강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 이상 희망이 없을 것 같아 우울증에 걸린다면, 그게 나만 치료하면 되는 일은 아니지 않을까. 원제 ‘Depressing: a public fee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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