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2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억만장자 출신 성범죄자인 제프리 엡스타인이 플로리다주 마러라고에서 파티를 즐기는 모습. <출처=CNBC 뉴스 유튜브 영상 갈무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야망이 운명의 반전을 맞았다.”(블룸버그통신)
20일 재집권 후 취임 6개월을 맞는 트럼프 대통령이 ‘제프리 엡스타인 정치 스캔들’로 예상치 못한 위기를 맞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날 블룸버그통신은 취임 직후 국내외 정치에서 거침없는 행보를 보여온 그가 의외의 지점에서 ‘처참한 실패’를 보여주고 있다고 전했다. 외신들은 엡스타인 수사 기록을 공개하겠다고 공언한 트럼프 행정부가 이를 번복하자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을 실망케 했다며, 이를 제대로 극복하지 않으면 트럼프 대통령이 지지 기반을 상당 부분 잃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 엡스타인 수렁에 빠진 트럼프, 소송으로 반격
19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자신에 대한 기사를 보도한 월스트리트저널(WSJ)을 상대로 100억 달러(약 14조 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WSJ 발행사인 다우존스를 비롯해 모회사 뉴스코프, 뉴스코프 명예회장으로 ‘미디어 재벌’로 불리는 루퍼트 머독, 최고경영자(CEO) 로버트 톰슨, 기사를 작성한 WSJ 기자 두 명이 피고에 포함됐다.
앞서 WSJ은 2019년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로 기소돼 맨해튼 연방교도소에서 수감 중 사망한 금융 부호 제프리 엡스타인에게 트럼프 대통령이 외설스런 편지를 보냈다고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엡스타인의 50번째 생일이던 2003년 여성의 나체를 손수 그린 뒤 자신의 서명을 남긴 편지를 보냈다.
마가 진영에서 엡스타인 사건은 그림자 권력집단이라는 소위 ‘딥 스테이트’의 존재를 밝힐 수 있는 핵심 사건으로 여겨졌다. 생전 수많은 파티 등에서 미국의 주요 권력자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었고, 성매매 알선 등을 일삼은 것으로 알려진 엡스타인의 ‘고객 명단’이 공개되면 그 실체를 규명할 수 있다고 본 것. 하지만 최근 트럼프 행정부는 고객 명단은 없다며 엡스타인 수사기록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마가 진영에선 큰 반발이 일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엡스타인에게 보냈다는 편지가 있었다고 보도되자 파장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WSJ이 가짜 뉴스로 나의 명예를 훼손하고 재정과 평판 측면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며 “나는 그림 같은 걸 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날 뉴욕타임스(NYT) 등은 “트럼프 대통령이 뉴욕 부동산 사업가로 일하던 시절 다수의 그림을 그렸고 이들 중 여러 점이 집권 1기 때 경매에서 수천 달러에 팔렸다”고 전했다.
● WSJ-폭스뉴스 사주 머독과 관계 냉각
외신들은 이번 소송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머독과 냉랭한 관계에 놓이게 된 점도 주목하고 있다. 머독은 미국의 대표 보수 매체로 유명한 폭스뉴스, WSJ, 뉴욕포스트를 모두 보유하고 있다. 머독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 호감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그가 보유한 매체와 트럼프 대통령은 원만한 관계를 이어왔다. 특히 폭스뉴스는 자타가 공인하는 ‘친트럼프 성향 매체’다. 실제로 폭스뉴스는 트럼프 대통령 재집권 뒤 인터뷰를 수차례 진행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의 차남 에릭의 부인 라라는 폭스뉴스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과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WSJ 보도에 앞서 여러 차례 머독에게 전화를 걸어 기사 게재를 막으려고 했으나 수포로 돌아갔다. 머독과 트럼프 대통령은 13일 뉴저지주에서 열린 클럽월드컵 결승전 VIP 박스에서 함께 경기를 관람하기도 했다. 기사 무마 시도를 거부한 건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머독의 전 측근은 “머독은 103세에 별세한 모친보다 더 오래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트럼프는 지나갈 사람이라 여긴다”고 했다.
또 WSJ 안팎에서는 그간 머독이 선정적이고 비윤리적인 보도를 용인해 지탄을 받았지만 특종을 막는 사람이 아니라는 평가가 나온다고 FT는 전했다. 이 매체는 머독이 트럼프와 합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우존스 대변인도 “우리는 보도의 엄격성과 정확성에 전적인 확신을 갖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소송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뜻을 강조했다.
다우존스 대변인은 “우리는 보도의 엄격성과 정확성에 전적인 확신을 갖고 있다”며 “모든 소송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외신들은 이번 소송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머독과 냉랭한 관계에 놓이게 된 점도 주목하고 있다. 머독은 친(親) 트럼프 매체로 유명한 폭스뉴스도 소유하고 있다. 폭스뉴스는 트럼프 대통령 재집권 뒤 인터뷰를 수차례 진행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의 차남 에릭의 부인 라라는 폭스뉴스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 건강문제, 시장 불신까지 겹쳐
이런 와중에 트럼프 대통령은 17일 자신이 노인성 질환인 ‘만성 정맥 부전’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이 질환은 70세 이상 고령자에게 흔한 증상”이라며 “심부전, 신장기능 저하, 전신 질환 등 다른 징후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79세 고령 대통령의 약점이 부각될 수 밖에 없는 이례적 발표라는 평가가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 조 바이든 대통령의 고령을 문제 삼아 인지 및 건강상태를 저격해왔다.
월가를 중심으로 시장 상황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이 금리 인하 요구를 수용하지 않는다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에 대해 해임을 언급하자,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최고경영자(CEO) 등 월가의 큰 손들이 일제히 반대 의사를 밝혔다. WSJ은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도 파월을 해임해선 안 된다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설명했다고 19일 보도했다. 최근 연준의 독립성을 해치는 행보에 대한 우려가 커지며 뉴욕증시와 미 국채 가격이 급락하는 등 시장이 요동치자,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로서는 파월을 해임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며 물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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