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100만 명 추방하겠다”…새 국면 접어든 美이민 단속 [트럼피디아] 〈33〉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7월 20일 08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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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1일 ‘악어 앨커트래즈(Alligator Alcatraz·악어감옥)’로 불리는 불법 이민자 구금 시설을 방문해 “이곳에서 빠져 나가는 유일한 방법은 추방”이라고 말했다. 오초피=AP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이민 단속이 더욱 강력해지고 있다. 이민 당국이 이민 법원, 농장 등 대규모 체포가 수월한 장소를 공략하며 지역 사회 내 긴장감은 최고조에 오른 상태다. 특히 최근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 통과로 천문학적인 예산을 확보해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강경 이민 정책에 더욱 힘을 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 “불법 이민자가 미국을 침공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민을 침공으로 규정해 공권력 투입을 약속했다. 남부 국경을 통한 이민자의 신규 유입을 막고, 미국 각지의 이민자를 찾아내 추방하는 것이 핵심 공약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남미 국가들이 미국에 범죄자를 들여보내고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러면서 이들로부터 미국인을 지키겠다고 했다. 이민자가 범죄자라는 프레임을 씌운 것. 인종주의 비판을 피하고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첫날 남부 국경에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를 통해 국경 장벽 건설과 순찰에 군장병을 투입하도록 조치했다. 이후 몰래 국경을 넘는 이민자의 수는 급감했다. 지난달 남부 국경에서 이민당국에 체포된 불법 이민자 수는 6072명으로, 뉴욕타임스(NYT)는 1960년대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전했다.

17일 알카트라즈 감옥을 찾은 팸 본디 법무장관(가운데). 소살리토=AP 뉴시스
여기엔 불법 이민자들을 본국이 아닌 제3국으로 추방하고, 관타나모 감옥을 불법 이민자 구금 시설로 사용하는 식의 충격 요법도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포감을 줘 불법 이민 시도를 차단하는 효과를 냈다는 것이다. 18일(현지 시간) 액시오스는 미 법무부와 내무부 등이 트럼프 대통령의 뜻에 따라 알카트라즈 감옥을 불법 이민자 구금 시설로 재개관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 이민법원과 일터 찾아가 체포
반면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초기 체포 및 추방 실적은 포부에 비해 저조했다. 만성적인 인력난에 시달리던 이민세관단속국(ICE)이 트럼프 대통령의 주문대로 범죄 이력을 보유한 불법 이민자를 대거 체포할 역량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악관은 거세게 실적을 압박했다. 이민 정책을 주도하는 스티브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은 5월 말 하루 체포 목표치를 3000건으로 기존의 세배로 늘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밀러 부비서실장은 이 시기 전국의 ICE 간부를 워싱턴 본부로 불러 단기 일용직 노동자들이 모이는 도소매점 등에 대한 단속을 실시하라고 지시했다.

과격한 단속은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발생한 불법 이민자 단속 반대 시위의 도화선이 됐다. 건축 자재점 ‘홈디포’ 등 로스앤젤레스 시내 상점가에서 ICE 단속이 벌어지자 이에 반발해 지난달 6일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다. 시위는 트럼프 대통령이 주방위군과 해병대를 투입하고, 시정부가 야간 통금 등을 내리며 약 열흘 만에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다.

6일 뉴욕 이민 법원에서 흰 셔츠를 입은 도미니카공화국 출신 이민자와 줄무늬 티셔츠를 입은 이민 활동가가 사복을 입은 이민 당국자들에게 연행되고 있다. 뉴욕=AP 뉴시스
최근 단속은 체포의 편의성을 최우선으로 두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미 전역의 이민 법원에서는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채 눈만 드러낸, 소속을 알 수 없는 요원들이 이민 심사를 위해 법원에 출두한 이민자들을 체포하는 풍경이 일상이 됐다고 NYT 등이 전했다. 10일에는 ICE가 캘리포니아주의 대마초 공장 2곳에서 360명 이상을 체포했다.

또 일 3000명이라는 실적 달성을 위해 범죄자를 특정하는 기존 기조를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액시오스에 따르면 최근 체포된 이민자 중 절반은 범죄 이력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ICE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5월 초 체포된 이민자 중 21%만 범죄 이력이 없던 반면, 지난달 초에는 이 수치가 47%로 두배 넘게 뛰었다.

● 이민 예산 ‘235조원’ 증액
미국에서 19세기 후반 주정부와 연방정부 차원의 이민 규제가 도입된 이래 가장 큰 규모의 추방이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앞으로 ICE에는 4년간 750억 달러(약 235조 원)라는 거액의 예산이 투입된다. 4일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에 따른 조치다. ICE 요원 1만 명 충원, 12만 명 규모의 수용 시설 확충 등이 이뤄질 예정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법안을 통해 “ICE가 가장 강력한 사법 기관으로 탈바꿈될 전망”이라고 평했다.

법안에는 이 외에도 국경 장벽 건설, 관세국경보호청(CBP) 예산 증액 등 총 1700억 달러 규모의 이민 예산이 포함되어 있다. 톰 호먼 백악관 국경 차르는 “이번 예산은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며 “연간 100만 명 추방도 가능해보인다”고 이코노미스트에 말했다.

미국 역사에서 강력한 반이민 정책은 반복돼 왔다. 1882년에 제정된 중국인배제법은 특정 인종의 이민을 금지한 미국 최초의 법으로, 중국인 노동자의 유입을 막기 위해 이들의 미국 국적(시민권) 취득과 신규 입국을 차단했다. 이 법은 1943년 공식 폐기되며 60년 넘게 존재했다.

1924년에는 존슨리드법을 통해 국가별 이민 쿼터제가 도입됐다. 아시아와 중동 출신의 이민을 금지하고, 동유럽·남유럽 국가 출신과 유대계에는 극소수의 이민만을 허용했다. 반면 서유럽 국가에 쿼터를 몰아주며 앵글로색슨백인(WASP)을 노골적으로 우대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 트럼프 2기의 주요 정책을 직접 설계하고 지휘하는 핵심 실세 밀러의 세계관은 트럼피디아 29화에서 다뤘다.

존슨리드법은 이민 정책을 주도하는 밀러에게도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밀러는 2015~2016년 극우 매체 ‘브레이트바트 뉴스’ 기자들과 주고받은 이메일에서 1924년 이민법에 서명한 캘빈 쿨리지 전 대통령을 여러차례 거론했다. 그는 “쿨리지가 했던 것처럼 이민을 완전 금지하는 법안을 지지한다”고 밝히고, 쿨리지 시대의 유산을 미국 사회가 기억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트럼프 2기 이민 정책의 규모와 강도는 어느 수준까지 갈까. 액시오스는 농장 노동자에 대한 이민 단속을 두고 회의하던 도중 트럼프 대통령이 이러한 농담을 던졌다고 전했다.

“스티븐은 20년 동안 미국에 살면서 전과도 없고,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이어도 (불법 이민자라면) 추방시킬 것이다. 정말 하드코어하다.”

34화 요약: 트럼프 대통령은 불법 이민자를 ‘침공자’로 규정하며 대규모 추방, 국경 단속 강화 등 강경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이민세관단속국(ICE)은 최근 체포 실적 압박 속에 범죄 이력 없는 이민자까지 무차별 단속에 나섰다. 트럼프 행정부는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을 통해 ICE에 천문학적 예산을 배정해 연 100만 명 추방을 노리고 있다.


동아일보가 아카이빙한 미니 히어로콘텐츠 ‘트럼프 2.0 폴리시 맵’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주요 정책을 한 눈에 확인하세요.

https://original.donga.com/2025/trump_policym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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