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후 광주 동구 소태동.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하는 최승일 씨(54)는 거세게 불어난 빗물 속에서 두 다리가 아스팔트 틈에 끼어 움직이지 못하는 70대 노인을 붙잡고 다급히 외쳤다. 노인은 이미 많은 물을 마셔 얼굴이 노랗게 질린 상태였다. 곧바로 전달된 망치를 손에 쥔 최 씨는 노인의 다리가 낀 도로 틈을 깨기 시작했다.
그 순간 노란색 승용차가 물살에 휩쓸려 두 사람을 향해 밀려왔다. 정비소 직원들이 몸을 던져 차량을 막아섰다. 이들은 20여 분간의 사투 끝에 노인을 무사히 구조해 물 밖으로 탈출시켰다. 노인은 다리에 가벼운 찰과상만 입었고 생명에 지장은 없었다.
● 떠내려오는 승용차, 몸으로 막으며 노인 구출
최승일 씨 제공20일까지 닷새간 한반도를 휩쓴 역대급 폭우로 전국 곳곳이 물에 잠기고 최소 16명 이상 숨졌다. 행정력이 총동원돼 피해를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가운데, 시민들도 직접 발 벗고 나서 사람들을 구하고 추가 인명 피해를 막았다.
17일 광주 소태동에서는 최 씨와 정비소 직원들, 인근 주민들이 힘을 합쳐 70대 노인을 구조했다. 이날 오후 5시쯤 폭우로 물에 잠긴 도로를 걷던 노인의 두 다리가 아스팔트 틈에 빠졌다. 처음에는 단순히 넘어진 것으로 보였다. 최 씨는 “노인분을 일으켜드리려 도로 가장자리 철조망을 붙잡고 다가갔는데 다리가 완전히 끼어 옴짝달싹 못하는 상태였다”고 말했다.
물살이 몰아치던 현장은 경사진 도로였다. 광주에는 이날 하루 동안 400㎜가 넘는 폭우가 쏟아져 역대 최다 강수량을 기록했다. 빗줄기는 거세게 이어졌고, 순식간에 물은 성인 허벅지를 넘더니 엉덩이 높이까지 차올랐다. 최 씨는 노인을 붙잡아 세운 뒤 소리쳐 직원들을 불러 모았다.
17일 광주 동구 소태동에서 최승일 씨와 직원들이 폭우 속 익사위기에 놓은 70대 노인이 숨을 쉴 수 있도록 합판으로 쏟아져 내려오는 물을 막고 있다. 옆에는 직원들이 떠밀려온 승용차를 막고 있다. 최승일 씨 제공물살은 키 178㎝, 체중 80㎏인 건장한 체격의 최 씨조차 버티기 힘들 정도로 거셌다. 최 씨는 직원들에게 “정비소 신축 공사 때 남은 합판을 가져오라”고 소리쳤다. 직원들이 합판을 들고 와 노인 주변에 세워 물살을 막자 점차 수위가 낮아졌고 노인의 안색도 차츰 돌아오기 시작했다.
30년 경력의 차량 정비기술사인 최 씨는 도로 상태를 감안할 때 다리가 꽉 끼어 있는 상태에서 무리하게 당기면 큰 부상이 우려된다고 판단했다. 그는 망치를 받아 쪼개진 아스팔트 사이에 끼워 넣고 비틀며 도로 틈을 넓혀 나갔다. 그 사이 직원들은 돌, 나무, 타이어 같은 부유물들을 온몸으로 막았다. 노란색 승용차 한 대는 최 씨와 노인 바로 뒤까지 밀려왔지만, 직원들이 힘을 모아 가까스로 막아냈다. 20여 분간 만에 노인의 왼쪽 다리가 먼저 빠졌다. 이어 오른쪽 다리도 꺼낼 수 있었다. 최 씨와 직원들은 노인을 부축해 무사히 물 밖으로 이끌었다.
노인은 다치지 않았지만 최 씨는 거센 물살 속 부유물에 다리를 찢기고 온몸에 멍이 들었다.
17일 광주 동구 소태동에서 폭우 속 위험상황에 놓은 70대 노인을 20여분 동안 사투를 벌여 구조한 최승일 씨. 최승일 씨 제공최 씨는 “구조하면서 1L들이 콜라병 만큼 빗물을 마신 것 같다”면서도 “나도 위험하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할아버지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무사히 구조해서 뿌듯하다”며 웃었다.
● 급류 속 시민 구출한 교사, 밧줄로 주민 구한 이장
17일 시간당 40㎜가 넘는 폭우가 쏟아진 경북 청도에서도 시민 구조가 이어졌다. 청도고등학교 교사 박제규 씨와 김동한 씨는 하굣길 학생들의 안전을 살피던 중, 소하천에 떠내려가는 60대 남성을 발견했다. 남성은 하천 물살에 휩쓸리다 바위를 간신히 붙잡은 상황이었다. 두 교사는 주저 없이 물에 뛰어들어 그를 구조했다. 이 남성은 작업 도중 발을 헛디뎌 100m가량 떠내려왔으며, 조금만 더 흘러갔다면 본류와 합류하는 급류에 휘말릴 뻔한 아찔한 상황이었다.
19일에는 산사태가 발생한 경남 산청군 송계마을에서 마을 이장이 물에 고립된 주민 2명을 직접 구조했다. 마을 주택들이 모두 침수된 가운데, 이장은 밧줄을 들고 불어난 물살을 헤엄쳐 주민들에게 접근해 그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 울산 태화강에서는 침수된 차량 안에 갇힌 시민 2명이 다수 시민의 신속한 신고 덕분에 구조됐다. 울산소방본부 관계자는 “시민들의 빠른 신고가 없었다면 골든타임을 놓쳤을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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