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훈아(78)의 59년 가수 인생은 불꽃 같았다. 직접 작사 작곡한 수많은 히트곡으로 대중들의 가슴을 울렸다. 때론 파격적인 발언과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늘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나훈아는 1966년 ‘천리길’로 데뷔한 뒤 ‘무시로’, ‘잡초’, ‘갈무리’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내며 언제나 최정상급 가수로 군림했다. 초기엔 부산 출신인 나훈아는 전남 목포 태생인 남진과 함께 1970년대 가요계에서 강력한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기도 했다.
가요계의 ‘원조 오빠’였던 그가 데뷔 이래 발표한 노래만 1200여 곡이 넘는다. 남성적인 호쾌한 외모와 그에 어우러지는 묵직한 저음, 특유의 ‘꺾기’를 섞은 절묘한 고음 등으로 세대를 통틀어 사랑받았다. 가수로서의 인기에 힘입어 1971년 영화 ‘풋사랑’을 시작으로 ‘어머니의 영광’, ‘우정’, ‘동반자’ 등 다수 작품에 배우로 출연하기도 했다.
친근한 모습으로 대중에게 다가갔던 남진과 달리, 나훈아는 신비주의를 고수해 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곡 발표나 콘서트 외에는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하지 않아 대중과의 스킨십도 거의 없는 편이다.
나훈아와 당대 최고의 여배우로 꼽히던 김지미의 결혼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나훈아는 1973년 일반인과 결혼했다가 2년 만에 이혼한 뒤, 1976년에 김지미와 결혼을 발표했다. 나훈아보다 7세 연상인 김지미는 당시 세 번째 결혼이었다. 1982년 파경을 맞은 뒤 나훈아는 1985년 후배 가수 정수경과 결혼했으나 33년 만에 이혼했다.
가수 나훈아. 예아라·예소리 제공 나훈아는 2006년 데뷔 40주년 공연을 치른 뒤 2007년에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진행할 예정이던 공연을 갑작스레 취소하며 건강 이상설 등의 루머에 시달리기도 했다. 여배우와의 염문설에 시달리던 그가 2008년 1월 직접 연 기자회견에서 테이블에 올라가 바지 지퍼를 내리고 “제가 바지를 벗어야 믿겠냐”며 목소리를 높인 장면은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조직 폭력배에 의해 신체 중요 부위가 훼손됐다는 소문에 정면으로 반박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반세기 넘게 그가 노래하게 한 동력은 ‘꿈’이었다. 나훈아는 2008년 기자회견에서 “가수는 꿈을 파는 사람이다. 꿈을 팔려면 꿈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꿈을 잃어버렸다. 다시 꿈을 찾게 되는 날이 언제가 될지 모른다”며 활동 중단을 시사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11년 만인 2017년 컴백한 앨범 제목은 ‘드림 어게인(Dream Again)’이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형’이라 부르는 독특한 가사의 ‘테스형’을 2020년 발표해 큰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한창이었던 그해 추석 연휴 TV에서 방송된 공연 ‘2020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속 테스형 무대가 전국적 화제를 모았다. 2022년과 2023년에도 각각 새 앨범 ‘일곱 빛 향기’와 ‘새벽’을 발매하기도 했다.
나훈아는 거침없는 언사로 대중들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특히 과거 정계 입문을 제의받았을 때 거절했다는 사실을 직접 인터뷰를 통해 밝히는 등 정치에 대한 언급이 잦았다. 2022년 부산 콘서트에서는 2018년 ‘평양 예술단 방북 공연’ 방북 공연 참가를 거절한 사실을 밝히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고모부를 고사포로 쏴 죽이고 이복형을 약으로 죽인 사람”이라며 “그런 사람 앞에서 ‘사랑’을 부를 수 없다”고 말했다.
한평생 가요계의 풍운아로 살아온 그는 지난해 2월 소속사를 통해 ‘고마웠습니다!’라는 제목의 자필 편지를 전하며 데뷔 56년 만의 은퇴를 시사했다. 이후 4월 인천, 5월 청주·울산, 6월 창원·천안·원주, 7월 전주, 10월 강릉, 11월 안동·진주·광주, 12월 대구·부산까지 전국 투어를 마치고 이달 12일 서울 KSPO돔에서 팬들에게 마지막 공연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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