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재단 ‘한국 복식 문화사’로 본 한복
조선초 엉덩이까지 내려오던 저고리… 후기 들면서 치마가 가슴 위로 올라와
여성성 부각 ‘하후상박’ 스타일로 진화
저고리 아래 흰색 말기 넣어 허리 강조… 다리 길어보이는 ‘하이웨이스트’ 효과
요즘은 설이 아니어도 한복 맵시를 뽐내며 고궁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한복의 우아함이야 두말할 나위가 없겠지만, 특히 많은 이들이 아름답다고 손꼽는 게 치마의 풍성함이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최근 발간한 ‘한국 복식 문화사’에 실린 글 ‘조선 후기 여성 패션과 아름다움’(이민주 한국학중앙연구원 전통한국연구소 연구원)을 통해 우리가 아는 한복 치마와 저고리가 어떻게 등장했는지 들여다봤다.
조선 후기 풍속화가 신윤복의 ‘미인도’(간송미술관 소장). 풍성한 치마가 두드러진다. 동아일보DB
한복 치마를 살피려면 먼저 그와 짝을 이루는 저고리의 변화를 들여다봐야 한다. 이민주 연구원에 따르면 조선 후기로 가면서 여성의 저고리는 길이가 극도로 짧아졌고, 소매통은 좁아져 팔뚝의 선을 드러냈다. 이런 저고리는 유학자의 눈엔 ‘요망스러운 옷’으로 보였다. 이덕무(1741∼1793)는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 이렇게 썼다.
“소매에 팔을 꿰기가 몹시 어려웠고, 한 번 팔을 구부리면 솔기가 터졌으며, 심한 경우에는 팔에 혈기가 통하지 않아 살이 부풀어 벗기 어려웠다. 그래서 소매를 째고 벗기까지 하였으니 어찌 그리도 요망스러운 옷일까.”
그러나 이 연구원은 “이런 옷이 노소와 신분을 따지지 않고 확산했던 건 누구나 인정하는 아름다움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라고 봤다.
저고리 길이가 짧아지면서 치마는 자연스레 가슴 위로 올려 입게 됐다. 그 속으로 껴입은 속옷은 치마를 부풀리는 효과가 있었다. 여성성을 강조한 ‘하후상박(下厚上薄)’형의 새로운 치마저고리 스타일이 탄생한 것이다.
이런 스타일은 이전까지 한국인이 착용했던 치마저고리와는 전혀 달랐다. 고구려 이후 조선 초까지도 저고리 길이는 엉덩이까지 내려왔고, 치마는 허리에 둘러 입었다. 이 연구원은 “17∼18세기 서양에서 여성성을 강조한 스타일이 유행한 것과 비슷한 흐름 속에서, 한복 치마 역시 착장법(着裝法)이 창의적으로 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슴 위로 올라와 흘러내리는 치마 끝을 누르느라 팔이 불편해지자 이를 보완하기 위해 허리띠를 사용했다. 치마의 색은 대체로 푸른색이었는데, 저고리 아래로 치마 색과 대비되는 흰색의 말기를 넓게 대 허리를 강조하기도 했다. 오늘날로 치면 ‘하이웨이스트’ 스타일로 다리가 길어 보이는 효과를 낸 셈이다.
몇 년 전부터 일부 중국인은 한복을 ‘한푸(漢服)’라고 부르며 치마저고리마저 중국 명나라의 옷이라고 억지 주장하고 있다. 이에 관해 이 연구원은 “중국은 심의(深衣·춘추전국시대 등장한 상하의가 하나로 이어진 옷)의 원피스형과 유군(상의에 유·襦, 하의에 군·裙을 입는 방식)의 투피스형이 공존하다가 청나라 때 치파오를 입으며 다시 원피스형으로 발전했다”며 “반면 우리나라는 삼국시대 이후 줄곧 투피스형의 치마저고리를 착용했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원은 이어 “복식은 늘 살아 숨쉬는 문화적 산물”이라며 “오랜 세월 한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과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직물을 바탕으로 당시 사람들의 미의식을 반영해 형성된 복식이야말로 진정한 ‘전통’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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