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라디오가 바꾼 한국인의 시간 관념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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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연대기-잊힌 시간 형태의 기록/이창익 지음/848쪽·4만 원·테오리아


‘시간’이란 놈은 참 묘하다. 미드 ‘왕좌의 게임’은 밤새워 8편을 봐도 금방 지나가는데, 고작 50분밖에 안 되는 수업 시간은 어떻게 그렇게 느리게 갈 수 있는지. 아무도 없는 한적한 겨울 바닷가에서 시간이 정지된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누구나 한 번은 경험했을 일이다.

‘시간’이 어떤 마법을 부려서 이런 현상을 일으키는지는 아인슈타인이나 스티븐 호킹이 살아 돌아와도 아마 설명이 불가능하지 않을까. 그 대신 저자는 시간이라는 감각할 수 없는 추상적인 대상을 말하기 위해, 거꾸로 인간에 의해 만들어져 시간을 알리던 사물의 행로를 추적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태양력이 채택된 1896년부터 일제강점기가 끝나는 1945년까지 시간을 알리던 사물의 변천사를 통해 ‘근대적인 시간’이 어떻게 우리 삶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설명하는 식이다. 종, 오포(午砲·시간을 알리는 대포), 사이렌, 시계, 라디오 등 여러 장치가 등장하는데, 저자는 그중에서도 시보(時報)를 알리던 라디오의 등장으로 기존의 시공간 질서가 완전히 질적 변화를 일으켰다고 말한다.

“… 본격적으로 라디오 시대가 시작되었고, … 정확히 똑같은 시각에 조선 전 지역의 모든 사람이 같은 정보를 듣고,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동작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라디오는 생각의 통일, 행동의 통일, 말의 통일을 달성함으로써 모든 사람을 같은 시간 안에 가둘 수 있는 막강한 근대적인 장치였다.”(4장 ‘라디오 시대’에서)

지역과 사람마다 서로 조금씩 달랐던 시간이 하나로 통일되고, 여기에 ‘정보’가 더해지면서 시간의 통일은 생각과 행동의 통일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설명이다.

지금 우리는 등하교, 출퇴근, 수업과 근무, 점심 식사 심지어 쉬는 시간까지 대체로 통일된 시간에 종속돼 바쁘게 산다. 휴가 때 찾은 겨울 바다에서 마치 시간이 정지된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은 그 종속된 시공간에서 잠시나마 벗어났기 때문은 아닐까.

#시간#근대화#시공간#변천사#라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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