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딩드레스가 오늘날과 같은 스타일로 정착한 데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1819∼1901)이 한몫했다. 전통대로라면 여왕은 결혼식에서 군주의 위엄을 상징하는 호화로운 붉은 벨벳 가운을 입어야 했다. 하지만 빅토리아 여왕은 당시 영국 상류층의 세련된 신부들이 채택하던 ‘공주 드레스’ 스타일로, 흰색 새틴(광택이 있고 매끄러운 직물) 위로 레이스를 장식한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자신이 손수 디자인한 것이었다. 여왕은 또 참석자들의 관심이 자신에게 집중되도록 “식장에 아무도 흰색 드레스를 입고 오지 말라”는 명을 내렸다고 한다. ‘민폐 하객룩 금지’의 원조인 셈이다.
이탈리아 볼로냐대에서 패션을 공부한 저자가 르네상스 이후부터 19세기까지의 초상화를 매개로 서양의 패션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1783년 그려진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1755∼1793)의 초상화는 시골 소녀 스타일로 보인다. 오늘날 시각에서 보면 평안하고 목가적인 느낌을 준다. 하지만 당대 프랑스인은 격렬하게 반발했다고 한다. 마치 ‘속옷(슈미즈)만 입은 채 정신도 집에 두고 나온 듯한 여인의 모습’으로 느꼈다고 한다. 프랑스인들은 ‘오스트리아 여자’ 앙투아네트에 대한 분노를 쏟아냈고, 중상모략도 난무했다. 소란은 ‘격식을 갖춘’ 새 초상화가 공개되자 진정되긴 했지만 기존 초상화가 왕비를 단두대로 이끄는 계기 중 하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흥미로운 역사와 함께 당대의 패션 리더들이 그려진 여러 초상화 도판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