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서 전문가 안승준 박사 인터뷰
혁신 유림 중심으로 ‘물과의 전쟁’
주민 의견-소송 과정 등 기록 남겨
‘실학’에 중점 둔 기존 연구와 차이
안승준 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고문서연구실장은 “고문서를 연구해야 우리 근대의 뿌리가 보인다”고 강조했다. 손에 든 것은 경북 경주시 강동면 아산 장씨 집안의 소유권 소송 관련 고문서. 수원=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우리 근대의 뿌리는 현실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 일부 유학자의 사상이 아니라 주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한 이들로부터 찾아야 합니다. 조선 후기 낙동강 유역에서 수해와 싸우고 기업적 경영을 했던 ‘혁신 유림(儒林)’이 바로 그들입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 장서각 고문서연구실장을 지냈던 고문서 전문가 안승준 박사(65)는 10일 경기 수원의 연구실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과거 낙동강과 지류인 남강 등은 홍수로 자주 범람했고, 방대한 땅은 옥토가 되기도 황무지가 되기도 했다. 이때 주민들이 ‘물과의 전쟁’을 치르기 위해 협력하고 갈등하는 과정에서 우리 근대의 단초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실학(實學)이나 전통적 공업의 발전 등에서 근대적 발전의 싹을 찾으려 했던 기존 연구와는 출발부터 다른 주장이다.
1996년부터 한중연에서 일하며 전국 고문서 43만여 점을 조사 및 수집, 정리, 간행한 안 박사는 “혁신 유림 집안에서 경제활동과 관련된 대규모 고문서가 만들어진 것 자체가 중요성을 보여준다”고 했다. 특히 그가 근래 입수해 주목한 것은 17∼19세기 경남 의령군 부림면 신반(新反)의 보림리(寶林里) 주민들이 남긴 고문서다.
보림리 주민들은 오래전부터 수해를 막기 위해 낙동강 지천인 신반·유곡천 유역에 버드나무 숲을 조성하고 계(契)를 통해 보존해 왔다. 1696년부터 100년 넘게 10여 리에 걸친 이 수림 지역을 전답으로 개발할 것인가, 아니면 숲으로 그대로 유지해 수익을 학교 재원으로 전환할 것인가를 두고 소송을 벌였다. 안 박사는 “혁신 유림을 중심으로 주민들은 치열한 논쟁과 법정 공방 끝에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방안을 도출했다”며 “우리 근대는 소송과 함께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안 박사는 최근 경상국립대 경남문화연구원 진주학연구센터가 주최한 컬로퀴엄에서 이 같은 연구를 발표했다.
안 박사에 따르면 진주 남강 하류의 마진(麻津)마을 재령 이씨 집안도 선비이면서 영농에 힘쓴 유농(儒農)이자 혁신 유림이다. 이 집안은 4만 그루에 이르는 임업과 대규모의 목축업을 경영했지만 정부가 수탈하려 하자 이에 맞서 소송전을 벌였다. 안 박사는 “재산 현황 등을 잘 아는 노비들로 소송에 대응하는 전문 팀을 꾸릴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이 지역의 이러한 풍토는 훗날 관(官)의 착취에 저항해 일어난 진주 민란으로도 이어진다.
마진마을은 삼성과 LG, GS, 효성 등 기업의 창업주들이 태어나 자라면서 교류한 경남 진주 승산마을과 5km 거리다. 안 박사는 “혁신 유림의 정신이 오늘날 글로벌 기업이 태어나는 바탕이 됐다고 본다”며 “조선 후기부터 오늘날까지의 발전을 연속선상에서 파악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내용은 고문서를 읽어야 비로소 알 수 있고, 조선왕조실록엔 안 나옵니다. 고문서의 조사, 정리, 해제, 탈초(脫草·초서 등을 읽기 쉬운 필체로 바꿈)가 역사학의 기초입니다. 이런 업무를 연구 업적으로 제대로 인정해 줘야 우리 역사학과 인문학의 기초가 탄탄해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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