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몹시도 그리워 창문 앞에 피어나 고개를 내밀고 바라보다가 지쳐 떨어져 죽는 그 순간까지 당신을 기다리겠습니다.
[복사꽃의 애절한 사랑 노래], 96쪽
복사꽃. 사진작가 최병관
한반도에서 피는 꽃을 1월부터 12월까지 종류별로 기록한 사진집 “꽃 따라 세월 따라”을 낸 최병관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건 2010년이다. 군인이 아닌 민간인 신분으로는 처음으로 육군의 지원을 받아 DMZ 155마일을 동쪽부터 서쪽까지 도보로 3번 횡단하며 사진으로 기록한 작품들을 내가 속한 회사(동아일보)와 함께 뉴욕 UN 본부에서 전시하는 일이 있었다. 그는 DMZ 사진을 찍은 다큐멘터리로 이름을 알려 왔지만 원래 시인에 가까운 사진작가였다. 인생과 자연에 초점을 집중해 찍은 사진으로 사진집 20권 이외에 포토에세이 5권, 포토 시집 2권을 이미 펴냈다.
70이 넘은 나이지만 그는 지금도 인천대공원과 시흥 관곡지에 가면 만날 수 있다(250쪽). 새벽 시간이거나 간밤에 비가 왔거나 눈이 왔으면 좀더 오래 그곳에 머문다. 유행이 한참 지난데다 단종된 니콘 카메라를 고집하고 렌즈는 중간 크기 하나만 사용한다. 달랑 카메라 가방 하나만 들고 다닐 뿐(30쪽) 삼각대나 플래시도 없다. 렌즈 앞에는 필터도 없다. 얼마 전부터는 건강에 좋다는 걸 경험한 후 맨발로 다닌다.
“꽃 따라 세월 따라”는 한반도에서 1월에 눈 속에 피는 복수초부터 12월 눈 속에 묻힌 국화까지 우리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는 꽃에 대한 기록(?)이다. 지난 10년간 촬영한 사진 299장이 실렸다. 기록이라고 하기엔 그의 사진은 무척 독특하다. 맥락을 보여주는데 관심이 많은 신문사 사진기자라서 그런지 내가 보는 그의 사진은 그림에 가깝다. 주제만 남고 여백이 많은 사진 그리고 거기에 붙은 짧은 감상들. 조선시대 채색수묵화 같다.
아이 사진을 잘 찍으려면 아이의 눈 높이로 카메라가 내려가야 한다. 눈이 맞아야 제대로 된 감정이 표현되니까. 땅에 붙어 있는 작은 꽃들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땅에 배를 깔고 찍어야 한다. 그래서 때론 미끄러지고 절벽에서 떨어질 뻔한 아찔한 순간을 맞기도 한다(20쪽). 생각지도 않게 작은, 하얀 노루귀를 뭉개는 실수를 저질러 가슴이 아프기도 한다.
작가가 생각하기에 사진을 잘 찍고 못 찍고는 “주제를 찾는 데 있다. 또한 빛의 강약, 각도, 시간, 위치, 자세에 따라서 남다르게 찍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 공부를 집중적으로 한다면 더 빠르게 더 좋은 사진을 찍을 수가 있다.” 그는 평소에 이발소에 갈 때도 카메라를 메고 걸어간다(80쪽). 그래서 그의 하루는 무척 고단하지만(42쪽), 봄을 가슴에 품기 위해 몸살이 나도록 꽃을 찾아 다닌다(40쪽). 그러다보면 누구나 봤지만 아무도 본 적이 없을 것 같은, 줄기 하나에 세 송이 코스모스가 달린 모습의 사진을 찍기도 한다(294쪽).
상사화. 사진제공 최병관 작가.작가는 접시꽃은 일부러 찾아다니지 않는다. 보이면 찍는다(220쪽). 가슴이 두근거려 쫓아다니며 찍는 꽃은 양귀비다.
320쪽에 달하는 책의 표지에는 부천 원미산의 진달래꽃이 실렸다. 누구나 찍을 것 같은 평범한 사진이다. 황홀하고 요염해서 작가가 매료된 양귀비(172쪽) 대신에 왜 이 사진을 대표 사진으로 생각했을까 헤아려 본다. “원미산에는 사랑의 노랫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어린아이들부터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 할아버지들, 바람 소리마저 사랑으로 가득하다. 요즘 원미산은 사람들과 진달래꽃, 봄바람이 하나 되어 기쁨으로 넘치는 세상을 만들고 있다. 또한 오래도록 쌓여있던 마음속 상처마저도 사라지게 하는 곳이 바로 원미산 진달래 동산이다”라는 작가의 시(詩)에서 그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월남전 참전용사이자 누구보다 우리의 역사와 땅을 사랑하는 작가는 세상이 평화롭고 안전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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