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바탕으로 온 말과 문장을 소설로 쓰는 작업을 해 온 소설가 김숨이 이번에는 시각장애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보지 못하는 이들이 본 세계’를 그려냈다. 그는 “마음에 구멍 같은 것이 있을 때 이분들을 만나며, 그 시기를 저도 잘 건너온 것 같다”고 말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소설가 김숨은 증언과 문학이 만나는 지점에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일궈온 작가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나 극동 러시아로 강제 이주한 조선인 등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면서 기록과 예술의 교차점에 오래도록 천착해왔다.
그가 이번에 시각장애인 다섯 명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이들이 본 세상을 그려낸 연작소설 ‘무지개 눈’을 펴냈다. 17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만난 작가는 “불면의 밤을 보내던 힘든 시기에 문득 보지 못하는 분들 생각이 났다. 막연히 안개 같은 희뿌연 세상을 볼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게 아닐 것 같았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며 작품을 쓰게 된 계기를 밝혔다.
소설은 선천성 전맹인 주부, 선천성 저시력에서 전맹이 된 특수교사 등 각자 다른 화자가 등장하는 다섯 개의 단편으로 구성됐다. 4∼5년 전, 맹학교 특수교사 이진석 씨를 알게 된 뒤에 선천성 전맹인 주부 전주연 씨, 전맹이면서 안마사로 일하는 김희정 씨 등 여러 시각 장애인들을 차례로 만나 인터뷰했다. 점자를 더듬으며 “혼자 ‘혼자’를 만지는” 맹학교 학생, 눈물이 고일 때마다 눈에 무지개가 뜨는 선천적 저시력자 등을 통해서 독자들은 이들이 보는 세계가 어떤 모습일지 낯선 상상을 해 보게 된다.
김 작가는 여러 해에 걸친 교류를 통해 이들의 삶에 대한 사실적 이해에 공을 들였다. 동시에 이를 점자나 노래, 희곡 등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시적 문장들로 풀어냈다. 상대를 타자화해 서사의 일부로 활용한 것이 아니라, 대상에 순수하게 몰입한 뒤 새로운 목소리를 불러냈다. 그는 “녹취나 기록을 하지 않는 대신 제 안에서 만들어진 문장에 집중한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선 최선을 다해 ‘들어야’ 한다. 그에게 “듣기는 오랜 문학적 고민이자 주제”다.
“소설가에게 듣기는 지워지고 삭제된 존재, 부정당해 훼손된 존재를 되살려내는 행위 같아요. 맞은편 누군가의 미세한 소리나 몸짓, 속삭임까지 다 알아차리는 이분들이야말로 저에게 듣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려준 분들이에요.”
그래서 그는 이 작품을 “보는 것에 대해 썼지만, 사실은 듣기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소설에서 시각장애인들은 ‘본다’는 말을 자주 쓴다. 서로를 향해 “뭘 보고 있냐”고 묻고, 수평선이나 새, 무지개를 “봤다”고도 말한다. 이 작품에서 ‘보다’는 시각적 인지를 넘어 오감으로 세계를 감각하는 하나의 방법이 된다.
“바다를 보지 못한다고 해서 바다에 관심이 없는 게 아니죠. 눈이 아닌 다른 것으로 봐요. 데이트할 땐 이들도 영화를 보러 가거든요. 이들이 일상과 삶을 살아내는 방식을 이해하고 열린 시선을 갖게 된다면 좋겠습니다.”
1997년 등단한 김숨은 2005년 첫 소설집 ‘투견’을 낸 이후 거의 매년 책을 출간했다. 현대문학상·이상문학상·대산문학상 등 거의 모든 문학상을 받았다. 추천사를 쓴 김정환 시인 말처럼 “이렇게 중단없이 쓰다가 쓰러지는 것 아니냐”는 동료들의 애정 어린 걱정도 받는다.
“소설은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통찰의 결과물 같아요. 이제 조금은 소설이 뭔지 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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