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소설가 스타니스와프 렘의 ‘솔라리스’(1961년)에서 제목을 가져온 임민욱 작가의 설치 작품. 미래의 행성 같기도, 한국의 황톳길 같기도 한 언덕에 일본 나라의 사찰 ‘도다이지’ 법당의 평면을 참고해 조명을 배치했다. 스튜디오 오실로스코프 촬영, 일민미술관 제공
현대 미술가 임민욱의 최근 작품들을 볼 수 있는 전시 ‘하이퍼 옐로우’가 28일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에서 개막했다.
이번 전시는 임 작가가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개인전을 연 뒤 10년 만에 개최하는 개인전이다. 6·25전쟁이나 5·18민주화운동, 이산가족 찾기 방송 등 한국 현대사를 직접적으로 다뤘던 이전 작품들과는 다른 양상의 작품들이 소개된다.
전시는 입장하자마자 미술관 1층 전시실 전체를 사막처럼 만든 설치 작품 ‘솔라리스’가 관객을 맞는다. 코르크 바닥 위에 구불구불한 언덕을 만들고 황토 분말, 테라코타 가루를 뿌려 모래 같은 느낌을 연출했다. 각 언덕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자가 칠해져 있거나, 종교를 연상케 하는 오브제들이 놓여 있다. 사이사이로 조명이 놓여 있는데, 일본 유명 사찰 ‘도다이지(東大寺)’ 법당의 평면도를 참고했다고 한다.
옛것을 연상케 하는 종교와 미래 행성이 떠오르는 전시장 분위기의 상반된 요소가 뒤섞여 정체성이 뭔지 알 수 없도록 만든 방식은 임 작가의 다른 작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를테면 2층 전시실 중앙에 있는 영상 작업 ‘동해사’는 일본 ‘불의 축제’와 ‘물의 축제’를 담은 영상이 좌우로 상영된다. 가운데에는 얼굴 11개의 보살 ‘십일면관음상’을 모티프로 한 애니메이션이 펼쳐진다. 좌우 영상에선 불과 물이 대립하고, 가운데는 과거와 미래가 섞인 모양새다.
3층 전시실에선 흑과 백, 파랑과 분홍 등 상반된 색채나 형태를 대비시킨 회화 작품이 전시됐다. 전시장 가운데 설치 작품 ‘정원과 작업장’은 작가가 작업실 진열장에 보관하던 여러 물건들을 가져와 만들었다. 이 작품 역시 검은 유리와 투명 유리를 교차해 올리고, 상판에는 하늘을 나는 까마귀 모형과 물 위에 띄우는 부표를 함께 배치했다.
일본 철학자 우카이 사토시는 임 작가의 최근작들을 “과거를 상속하는 일의 어려움”이라고 해석한 바 있다. 한국 역사의 구체적인 사건에 적극 개입하는 작품을 선보이던 작가의 돌연한 변화가 이런 ‘어려움’과 관계가 있는지 궁금해진다.
임 작가가 작가 노트에서 “관광객은 정치에 관심이 없고 언어적 소통 없이도 포용성과 자비를 베푼다”고 언급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이렇게 한 발짝 물러서서 뭔가 ‘의미를 지우려는’ 태도가 작품 곳곳에서 읽힌다. 미술관은 3월 마지막 주 ‘아티스트 토크’에서 임 작가와 우카이 사토시의 대담을 준비하고 있다. 4월 2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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