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 척하며 악행 멕시코 마약왕 “여자가 되고 싶어요”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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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아 페레즈’ 내달 12일 개봉
무거운 이야기, 노래-춤으로 풀어
“볼거리 많다” 해외 평단 반응 후끈
아카데미 12개 부문 후보로 올라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는 여성이 된 멕시코 마약왕 ‘마니타스’(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오른쪽)와 그를 돕는 변호사 ‘리타’(조 샐다나)의 이야기가 뼈대를 이룬다. 가스콘은 이 작품으로 트랜스젠더로는 처음으로 다음 달 2일(현지 시간) 열리는 미국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난 여자가 되고 싶어.”

멕시코 마약왕 ‘마니타스’(카를라 소피아 가스콘)는 이른바 ‘마초’다. 목소리는 허스키하고, 덩치는 위협적일 정도로 거대하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사람을 납치하고 죽이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쩐지 변호사 ‘리타’(조 샐다나) 앞에선 한없이 약해졌다. 결국 강한 자만 살아남는 멕시코 사회에서 자신의 성 정체성을 숨기고 ‘센 척’하며 살아왔다고 고백한다. 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 자신을 여성으로 바꾸는 수술을 해줄 의사를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흔히 성 정체성을 다룬 작품이라면 ‘대니쉬 걸’(2016년)처럼 주인공이 자신의 성향을 깊이 고민하며 갈등하는 진지한 이야기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다음 달 12일 국내 개봉하는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는 이런 예상을 산산조각 낸다.

일단 이 영화는 어깨가 들썩거리는 ‘뮤지컬’이다. 노래와 춤으로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이야기를 가볍게 풀어낸다. 마약왕 부인 제시 역을 맡은 미국 팝가수 설리나 고메즈는 ‘Mi Camino’처럼 남미 특유의 한과 흥이 녹아 있는 노래를 가뜬히 소화한다. 후반부 리타가 빨간색 정장을 입고 부패 가득한 멕시코 상류층 앞에서 선보이는 솔로 댄스 장면도 인상적이다. 댄서 서바이벌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를 보는 듯하다.

성 정체성 고민을 넘어서는 서사도 눈길을 끈다. 마니타스는 여성인 에밀리아 페레즈가 된 뒤에도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 잔인하게 남을 착취했던 과거를 잊지 못해서다. 과거에 자신이 저지른 악행을 되돌리려 한다. 겉으론 남성이 여성이 되는 과정을 다룬 작품이지만, 근원적으론 악인이 ‘성자’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트랜스젠더를 연기한 가스콘은 실제로 2018년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 과거 남성일 때 얻은 딸과 수술 이후에도 함께 살고 있다고 한다.

해외 평단의 반응은 뜨겁다. 지난해 5월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에서 최초 공개된 뒤 9분 동안 기립박수를 받았으며, 심사위원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미 골든글로브(4개), 영국 아카데미(2개), 미 배우조합상(1개)도 받았다. “피투성이 범죄 현장,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 등 너무나 많은 요소 덕분에 눈 한 번 깜빡이지 못할 것”(미국 뉴욕타임스·NYT), “열광적이고 재밌게 멕시코 카르텔을 다룬 뮤지컬”(영국 가디언) 등 호평이 넘쳐난다.

하지만 최근 가스콘이 과거 소셜미디어에 썼던 글들은 최근 심각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무슬림은 인류의 혐오”, “(경찰 과잉 진압으로 숨진) 조지 플로이드는 마약 중독자에 사기꾼”, “(배우 윤여정이 여우조연상을 받은 2021년 오스카는) 흑인·한국인 축제, 흉한 시상식” 등 인종과 종교를 차별하는 내용이 적지 않다. 남미에서는 영화적 흥미를 위해 멕시코를 악의 소굴로 과장했다는 반발도 나왔다.

‘에밀리아 페레즈’는 다음 달 2일(현지 시간) 미 로스앤젤레스(LA) 돌비 극장에서 열리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에서 작품상·여우주연상·주제가상(2개) 등 12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있다. 가스콘이 상을 받으면 오스카 최초의 트랜스젠더 여우주연상이 된다. ‘워크(woke·차별에 깨어 있음)’ 문화에 비판적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임기 초반에 오스카가 성 정체성을 다룬 영화에 과연 작품상을 건넬지도 관심거리다.

#에밀리아 페레즈#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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