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당신의 몸은 생각보다 유능하다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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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제멋대로 한다/이토 아사 지음·김영현 옮김/256쪽·1만7000원·다다서재


피아노를 연주하다 보면 의지대로 안 되는 손동작들이 있다. 일상에서 잘 쓰지 않는 손 모양일 때 더욱 그렇다. 그런데 손가락을 자동으로 움직여주는 보조 장치를 사용한 뒤 다시 연주해보는 실험을 하자 이전보다 손가락을 빠르고 복잡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고 한다. 보조장치 도움으로 터득한 몸의 감각이 새롭게 손 쓰는 방법을 익히게 해줬기 때문이다.

이 책은 “지금까지 탐색하지 않았던 몸의 가능성을 개발함으로써 ‘가짜 한계’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오랫동안 장애와 몸의 고유성에 대해 연구해온 일본 도쿄공업대 미래인류연구센터장이 첨단 기술 전문가 다섯 명과 함께 우리 몸의 숨겨진 능력과 가능성에 대해 연구하고 취재한 내용을 담았다. 손가락으로 스마트폰 화면을 제어하는 기술을 발명한 레키모토 준이치, 세계적인 컴퓨터과학 연구 기관인 소니 컴퓨터사이언스 연구소의 후루야 신이치 등이 참여했다.

특히 ‘생각이 몸을 통제한다’는 통념을 부수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일본 프로야구 팀에서 21년간 투수로 활동했던 구와타 마스미에게 “똑같은 자세로 볼을 30회 던져달라”고 요청한 실험이 대표적이다. 에이스 투수 출신답게 결과는 안정적이었으나, 의식적으로 동일한 자세를 취하려 했던 노력은 헛수고였다. 공을 놓는 지점은 점점 앞으로 갔고 높이도 낮아졌다. 책에 따르면 이는 ‘똑같은 자세로 던지겠다’는 생각의 결과라기보다는 “오차를 포함한 정답에 몸이 먼저 반응한 것”이자 “몸이 의식에 앞서 어떤 일을 해낸 것”이었다.

인공지능(AI)에 관한 마지막 장은 ‘할 수 있다’의 의미에 대해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영어가 서투른 사람이 실시간 AI 자동 번역에 자신의 목소리까지 덧씌울 수 있다면 과연 이 사람은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인가, 여전히 못하는 사람인가.

저자는 “우리 사회에서는 보통 ‘할 수 있다=뛰어나다’, ‘할 수 없다=열등하다’라는 능력주의적 척도가 갈려 있다. 그러나 능력이 확장된 ‘몸’의 관점에서 보면 할 수 있음에 대한 정의부터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몸의 가능성#장애#통념#능력주의#인공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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