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현지 시각)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아노라’ 작품·감독·여우주연·각본·편집상
마이키 매디슨, 데미 무어 제쳐 이변
애드리언 브로디 생애 두 번째 오스카
LA화재 극복 메시지…진 해크먼 애도
Sean Baker accepts the award for best director for “Anora” during the Oscars on Sunday, March 2, 2025, at the Dolby Theatre in Los Angeles. (AP Photo/Chris Pizzello)
올해 아카데미의 선택은 ‘아노라’였다.
영화 ‘아노라’는 2일(현지 시각) 미국 로스엔젤레스(LA) 할리우드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7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감독·여우주연(마이키 매디슨)·각본·편집 등 5관왕에 올랐다.
당초 브래디 코베 감독의 ‘브루탈리스트’, 자끄 오디야르 감독의 ‘에밀리아 페레즈’ 등과 경합이 예상됐으나 ‘에밀리아 페레즈’가 주연 배우 칼라 소피아 개스콘의 과거 혐오 발언으로 레이스에서 사실상 탈락하고, ‘브루탈리스트’가 레이스 막판 힘을 못 쓰면서 올해 주인공이 됐다.
◇여우주연상도 ‘아노라’ 시상식 최대 이변
‘아노라’를 만든 션 베이커(Sean Baker·54) 감독은 지난해 5월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데 이어 아카데미 작품·감독상을 받아내면서 델버트 만, 봉준호에 이어 칸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감독상을 동시에 받은 세 번째 감독이 됐다. 베이커 감독은 감독상을 받기 위해 무대에 올라 감사 인사를 한 뒤 “팬데믹 기간 1000개가 넘는 스크린이 사라졌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장에서 보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더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날 자리에 참석한 영화인들을 향해 “아무리 영화 산업이 힘들어진다고 해도 우린 계속 영화를 만들 것이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이번 시상식 최대 이변도 ‘아노라’애서 나왔다. 당초 여우주연상은 골든글로브·배우조합 시상식 등 앞선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휩쓴 ‘서브스턴스’의 데미 무어에게 돌아갈 것으로 예상됐으나 ‘아노라’에서 스트리퍼 아노라를 연기한 1999년생 배우 마이키 매디슨(Mikey Madison·26)이 차지했다. 매디슨은 “성노동자 커뮤니티에 감사하다”며 “앞으로도 당신들을 지지하고 당신들과 동행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함께 후보에 오른 배우들을 언급하며 “사려 깊고 지적이며 아름다운 분들과 함께 후보에 올라서 기쁘다”고 했다.
‘아노라’는 뉴욕에서 스트리퍼로 일하는 아노라가 러시아 재벌 2세 이반을 고객으로 맞게 되고, 철저한 금전 관계로 맺어진 섹스 파트너를 넘어 급기야 그와 결혼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베이커 감독은 ‘스타렛’(2012) ‘탠저린’(2015) ‘플로리다 프로젝트’(2017) 등에서 성노동자·성소수자·이민자·하층민 등 소위 비주류 인간들의 삶과 알게 모르게 그들을 타자화·대상화하는 개인적·사회적 억압을 그려왔다. ‘아노라’는 베이커 감독의 이 작품 세계를 아우르는 완결판이자 정점인 영화로 평가 받았다.
◇두 번째 오스카 애드리언 브로디 전설이 되다
남우주연상은 ‘브루탈리스트’의 애드리언 브로디(Adrien Brody·52)가 손에 넣었다. 이로써 브로디는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두 번 이상 받은 11번째 배우가 됐다. 그는 2003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피아니스트’로 역대 최연소인 29살에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적이 있다.
브로디에 앞서 남우주연상을 두 차례 이상 받은 배우는 10명이 있었다. 유일하게 세 번 수상한 대니얼 데이루이스를 포함해 프레드릭 마치, 스펜서 트레이시, 개리 쿠퍼, 말런 브랜도, 더스틴 호프먼, 잭 니컬슨, 톰 행크스, 션 펜, 앤서니 홉킨스 등이다.
브로디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헝가리계 유대인 건축가 ‘라슬로 토스’를 맡아 인간의 위대함과 나약함, 겸손과 오만, 위선과 위악은 물론이고 시대가 안겨준 고통과 그 고통이 유발한 트라우마를 가슴에 품은 듯한 연기로 인생 최고 연기를 펼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에게 첫 번째 오스카를 안겨준 ‘피아니스트’에서도 브로디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이자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로프 슈필만을 연기했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은 지난해 발생한 LA 화재 참사로 다소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앞서 아카데미는 지난달 열릴 예정이었던 후보자 오찬 행사 등 각종 부대 행사를 모두 취소했다. 이날 시상식엔 LA 소방서 관계자 10여명이 무대에 올라 영화인들의 박수를 받았다. 시상식 사회를 맡은 코미디언 코넌 오브라이언은 “이들이 진짜 영웅”이라고 했고, 이 모습을 지켜보던 배우 키어런 컬킨은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에릭 스캇 LA 소방서장, 조디 슬러커 페서디나 소방서장 등은 밝게 웃으며 영화 관련 농담을 던져 재난을 함께 극복해나가자는 메시지를 에둘러 던졌다.
지난달 26일 뉴멕시코주 샌파페이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진 해크먼, 지난해 11월 세상을 떠난 음악 프로듀서 겸 작곡가 퀸시 존스를 추모하는 시간도 있었다. 배우 모건 프리먼은 “해크먼은 자신이 남길 유산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저 노력하는 배우로 알아줬으면 한다고 얘기하곤 했다. 당신은 그렇게 기억될 것이다”고 말했다. 해크먼은 ‘프렌치 커넥션’(1971)으로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용서받지 못한 자’(1992)로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우피 골드버그와 오프라 윈프리는 존스를 애도했다. 두 사람은 존스에 대해 “그래미상을 28회 받았고, 흑인 최초로 오스카 음악상 후보에 오른 전설”이라며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말했다. 존스는 아카데미 후보에 7차례 오른 적이 있다.
◇수상자(작)
▲작품상=아노라 ▲감독상=션 베이커(아노라) ▲여우주연상=마이키 매디슨(아노라) ▲남우주연상=애드리언 브로디(브루탈리스트) ▲남우조연상=키어런 컬킨(리얼 페인) ▲여우조연상=조이 살다냐(에밀리아 페레즈) ▲촬영상=브루탈리스트 ▲각본상=아노라 ▲각색상=콘클라베 ▲국제장편영화상=아임 스틸 히어 ▲의상상=위키드 ▲분장상=서브스턴스 ▲편집상=아노라 ▲음악상=브루탈리스트 ▲주제가상=에밀리아 페레즈 ▲미술상=위키드 ▲음향상=듄:파트2 ▲시각효과상=듄:파트2 ▲장편애니메이션상=플로우 ▲장편다큐멘터리상=노 아더 랜드 ▲단편영화상=나는 로봇이 아닙니다 ▲단편애니메이션상=사이프러스 그늘 아래 ▲단편다큐멘터리=온리 걸 인 더 오케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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