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앉은 식탁서 한명만 살아남아야 한다면…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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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 장편소설 ‘뱅상 식탁’ 펴낸 설재인
극한 상황속 드러나는 인간의 민낯 그려
“레스토랑판 오겜” 선명한 캐릭터 주목

4일 만난 설재인 작가는 특목고 교사, 유기견 봉사, 복싱 선수 경력 등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다양했다. 그는 복싱 얘기를 하며 “초등학생 때부터 저랑 스파링을 했던 어린 친구가 최근에 국가대표가 됐다”며 “어릴 때 저한테 실컷 맞았는데 고교 1학년이 되더니 제 갈비뼈를 부러뜨렸다. 피의 복수를 한 것”이라며 웃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삼면이 막힌 테이블에 휴대전화조차 반입이 금지된 100% 예약제 레스토랑 ‘뱅상 식탁’. 독특한 콘셉트 덕에 인기몰이 중인 이곳에 어느 날 커플 네 쌍이 방문한다. 식사가 한창일 즈음 갑자기 총성이 울리고 “테이블당 한 명만 살 수 있다”는 규칙이 공지된다. 10분 안에 누굴 살리고 누굴 죽일지 결정해야 하는 상황. 입버릇처럼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커플들은 숨겨두었던 진실을 꺼내놓기 시작한다.

최근 나온 스릴러 장편소설 ‘뱅상 식탁’(북다). 극한에 처한 인간들이 본모습을 드러낸다는 설정과 거침없는 전개, 선명한 캐릭터가 마치 레스토랑을 무대로 펼쳐지는 ‘오징어 게임’을 보는 듯하다. 하지만 4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설재인 작가(36)는 정작 “피 나오는 드라마는 무서워서 못 본다”고 한다.

설 작가는 서울대 수학교육과를 나와 5년 반 동안 고교 수학 교사를 지낸 이력이 있다. 그는 “교사를 하면 보통 하루에 200명 정도를 만나게 된다”며 “200개의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사람을 보게 되는 셈이다. 다양한 성격의 인물을 만들어 내는 데 그때의 경험이 녹아 있다”고 했다. 또한 작가는 “인간의 다중성에 끌린다”고도 했다. 그의 소설에 겉으론 다정다감해 보이지만 내면은 추한 인물들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다.

“저도 어렸을 때 되게 뒤틀린 면을 갖고 있었거든요. 그걸 숨기기 위해 겉으로는 순종하고 착해 보이려고 하는 면도 갖고 있었고요. 인간은 누구나 이런 다중성을 갖고 있다고 봐요.”

소설은 ‘인간의 민낯이란 이런 걸까’ 싶을 만큼 피가 튀고 잔인하다. 설 작가는 “요즘 뉴스를 보면 상상했던 것 이상의 일들이 세상에선 벌어진다”며 “창작자로서 굳이 먼저 필터링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했다.

2023년에 출간한 소설 ‘딜리트’(다산책방)를 쓸 때도 그랬다. 주변에선 교사의 극단적 선택이란 주제가 ‘너무 과장됐다’는 염려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직후 비슷한 실제 사건이 벌어졌다. 설 작가는 “내가 경험해 보지 못했다고 해서 세상에 그런 일이 없다고 단정 짓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에 많은 갈등을 불러일으킨다”며 “이런 일이 실제로 있다고 상상의 지평을 넓혀 주는 게 이런 소설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목고 담임교사까지 맡았던 그는 서른 살이던 2019년 별 계획 없이 퇴사했다고 한다. ‘뭘 할까’ 고민하다가 맨땅에 헤딩하듯 소설을 써서 투고했다.

“한국에 있는 웬만한 출판사들은 투고 메일을 다 한 번씩 보내본 것 같아요. 50번 넘게 거절당하고 딱 한 군데서 받아준 게 첫 소설 ‘내가 만든 여자들’(카멜북스)이었어요.”

숱한 거절에도 맷집 좋게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설 작가는 “10년 가까이 하고 있는 복싱 덕”이라고 했다. 그는 실제로 2018년 전국신인대회까지 나갔던 복싱 선수였다. 지금도 매일 두세 시간씩 “국가대표를 꿈꾸는 학생들의 샌드백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숱한 거절 메일을 받았을 때도 아무렇지 않았던 이유는 하도 맞아 봤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며 씩 웃었다.

설 작가가 정의하는 본인의 정체성도 흥미롭다. 자신을 “원고 노동자”라고 불렀다. 지금까지 한 번도 마감을 어긴 적이 없다고 한다. 2019년 첫 책을 내고 지금까지 소설만 열여덟 권을 펴냈다. ‘뱅상 식탁’을 내고 한 달도 안 돼, 찜질방이 배경인 SF(공상과학)소설 ‘레드불 스파’(한끼)를 내놓기도 했다.

“원고 노동자는 신뢰가 가장 중요합니다. 마감을 늦지 않고 성실하게 쓰는 것, 지금까지 그거 하나로 살아남았다고 생각해요.”

#스릴러#장편소설#뱅상 식탁#설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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