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연 작가는 “희귀하지만 희한하고, 별 쓸모 없는데 중요하다고 여겨진다는 점에서 소설가로 산다는 건 고라니로 사는 것과 비슷하다”고 했다.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실패라는 게 어디 있어요? 살면서 죽지 않으면 공부 아닐까요?”
25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이렇게 말하는 김호연 작가(51)에게선 늦깎이로 빛을 본 사람 특유의 내공과 겸손이 묻어났다. 소설 ‘불편한 편의점 1·2’와 ‘나의 돈키호테’를 도합 180만 부 베스트셀러에 올린 그가 이번엔 에세이 ‘나의 돈키호테를 찾아서’(푸른숲)를 냈다.
작가의 성공담을 들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김 작가는 신간에 대해 “제가 뒹굴고 실족(失足)한 얘기들”이라는 말부터 꺼냈다. 실제로 이 책은 실패담 모음집에 가깝다. 글이 안 써져 거리를 헤매고, 한 줄도 못 써서 찝찝하게 침대에 눕고, ‘관찰 예능에 출연한 연예인이 내 책을 냄비 받침으로 쓰는 요행 덕에 책이 역주행하길’ 바라는 인간적인 고백이 담겨 있다.
김 작가는 시나리오 대본 작업, 출판사 소설 편집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며 약 20년 동안 꾸준히 소설을 썼다. 네 번째 소설마저 지지부진하던 2019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3개월간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해 집필할 기회를 얻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불편한 편의점1’(2021년)과 ‘나의 돈키호테’(2024년)를 집필했다. “네 번째 소설마저 잘 안 됐을 때, 저는 거의 투명 인간 같았어요. 민망한 모습이나 바보 같은 모습, 제 민낯을 가감 없이 담으려고 했어요.”
김 작가의 이야기가 실패담에서 끝나지 않는 이유는 그가 ‘계속 걸었기’ 때문이다. “죽지 않으면 돼요. 살아 있는 게 승리거든요.” 그의 말은 단순하고 명료했다. “누구나 자기 업(業)에서 ‘업 앤 다운’이 있을 텐데, 그냥 김호연처럼 바보짓 한번 하고, 무모한 도전이라도 해보고 농담하면서 버티면, 좋은 기회도 생기는구나 하고 기운을 얻으면 좋겠어요.”
그는 인터뷰 내내 ‘책임감’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책 강연도 소통하지 못한 곳을 찾아간다고 했다. 다음 주에는 울릉도에서 강연한다. “작가들이 많이 못 가는 곳이니까 제가 가야죠.”
해외도 마찬가지다. 현지 출판사의 초청이 없어도, 북토크와 인터뷰 기회를 직접 만들어냈다. 현재 ‘불편한 편의점1’은 27개국에 수출됐다. “외국 독자들이 한국 책을 읽는 건 한국 문화를 알기 위해서예요. 물론 케이팝이나 영화, 드라마 보면 아주 선명하게 볼 수 있죠. 하지만 문학이라는 매체로 접하는 질감이 또 다르거든요.”
김 작가는 이번 신간의 독자에게 사인을 할 때 “계속 걸어요, 계속”이라는 문구를 함께 쓰고 있다. “제가 쓰는 소설들도 그런 얘기잖아요. 실패한 사람들, 그래도 밥은 잘 먹고 다니는 사람들. 인생의 희로애락을 겪으며, 작은 즐거움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저도 그렇게 살아요.”(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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