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한국문학번역상 대상 시상식에 참석한 김혜경 교수(왼쪽)와 장-클로드 드크레센조 교수. 두 사람은 2000년대 초반부터 프랑스 엑스-마르세유대에서 한국학을 가르치고 한국문학 전문 출판사를 운영하는 등 K-문화 전파에 앞장 서 왔다. 김혜경 교수 제공
“포장마차에 술 마시러 오는 분들, 길에서 물건 파는 분들…. 한국의 ‘보통 사람들’에게 바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습니다.”
한국인에게서 놀라움을 넘어 경이를 느낀다는 프랑스인이 있다. 2003년 프랑스 엑스-마르세유대에 한국학과를 개설한 데 이어, 한국문학 전문 출판사를 세운 장-클로드 드크레센조 교수(73)다. 그는 한국인 부인과 한국인 며느리가 있고, 한국어 이름(장길도)도 따로 있는 ‘원조격’ 한류 전도사다.
지난달 31일 에세이 ‘경이로운 한국인’(마음의숲)을 펴낸 드크레센조 교수를 4일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부인이자 엑스-마르세유대 한국학과 교수인 김혜경 씨도 함께 했다. 두 사람은 현재 프랑스 남부 엑상프로방스에 살고 있다.
“한국에선 주사를 놓기 전에 볼기를 찰싹 때리죠. 도무지 적응이 안 되는 순간이에요. 환자가 주사 맞는 아픔을 잊게끔, 생각을 완전히 다른 곳으로 바꾸기 위해 때리는 건데 이게 아주 재밌습니다.”
에세이엔 이러한 사례가 100개 넘게 실렸다. 드크레센조 교수는 “이 책에서 말하고 싶었던 건 한국이 아니라 한국인”이라며 “한국에 대한 책은 꽤 있는데 한국 사람들에 대한 책은 많지 않다”고 했다.
그는 해마다 두세 차례 한국을 찾고, 그때마다 하루 두세 건씩 약속을 소화하는 ‘인싸’다. 이 책은 그가 여러 한국인과 교류하며 찾아낸 한국의 독특한 문화 관찰기를 모은 셈이다.
예를 들면, 어느 날 드크레센조 교수는 한국인 작가들이 하나같이 새끼손가락을 바닥에 괴고 글씨를 쓴다는 걸 발견했다. 그는 이 습관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궁금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어린이들이 어떻게 글씨 쓰는 법을 배우는지 알아보고, 자음과 모음이 결합돼 네모꼴을 이루는 한글의 문자 모양과 필기법의 상관관계를 찾아 나섰다.
드크레센조 교수는 2011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드크레센조’ 출판사를 세운 뒤 한국 소설가 한강 은희경 정유정 김애란 등의 작품을 프랑스에 소개했다. 이승우 작가의 장편소설 ‘캉탕’을 김 교수와 공역해 2023년 한국문학번역상 대상도 받았다. 강동호 문학평론가에 따르면 2012~2024년 프랑스에서 번역된 한국문학 단행본은 총 242종. 이 중 21.5%에 이르는 53종이 드크레센조 출판사에서 출간됐다. 단일 출판사로서는 엄청난 비중이다.
부인인 김 교수는 현재 엑스-마르세유대 아시아학연구소장을 지내고 있다. 김 교수는 “요즘 입학 경쟁률이 가장 높은 게 한국학”이라며 “75명을 뽑는데 해마다 2000명 이상 지원자가 온다. 이 덕에 올해부터 정원이 100명으로 늘었다”고 했다.
“지금 프랑스에선 다른 대학도 마찬가지예요. 많이 몰리지 않는 대학도 한국학과는 1000명씩 지원해요. 유럽에서도 프랑스가 가장 열기가 뜨겁다고 할 수 있어요.”(김 교수)
드크레센조 교수는 이같은 한류 붐 형성에 한국 영화의 역할이 컸다고 평했다. 그다음 K팝과 드라마다. K문학이 다음 바톤을 이어받을 수 있을까.
“한국은 시집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나라예요. 시집의 판매량과 출간 부수를 보면 정말 놀랍습니다. 프랑스에선 상상할 수 없는 숫자죠. 현재 한국도 문학이 다른 나라처럼 어렵다지만, 그래도 한국인 정서에는 시를 좋아하는 마음이 남아있는 것 같아요. 한국은 다시 문학이 자기 자리를 되찾을 거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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