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부채의 마법… 나뭇잎 소리-난꽃향 살랑살랑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4월 8일 03시 00분


코멘트

‘선우풍월: 부채, 바람과 달…’展
간송미술관서 내달 25일까지
선면서화 54건 등 엄선해 소개
추사 관련 작품 ‘지란병분’ 눈길

단원 김홍도의 1790년 부채 그림 ‘기려원유(騎驢遠遊·말을 타고 멀리 유람함)’. 왼쪽엔 나그네의 시름을 노래한 시가 쓰여 있다. 간송미술관 제공
부채에 그려진 댓잎이 부드러운 여름 바람에 흔들리는 듯하다. 농담(濃淡)을 절묘히 오가는 청록빛은 청량한 느낌을 준다. 바스락대는 소리가 절로 날 것만 같은 부채 위쪽엔 짧은 묵서가 가지런히 적혔다. “여름날 더위를 식히는 데 사용하십시오.”

19세기 청나라 학자 섭지선(葉志詵)이 조선 정조의 사위였던 문인화가 해거재 홍현주(海居齋 洪顯周)에게 그려 선물한 부채 그림 ‘청죽(靑竹)’이다. 9일 서울 성북구 간송미술관에서 개막하는 ‘선우풍월(扇友風月): 부채, 바람과 달을 함께 나누는 벗’에서 처음으로 관객을 만난다. 미술관이 1977년 개관 6주년을 맞아 부채 소장품을 선보인 이후 48년 만에 ‘선면(扇面) 서화’를 한 데 모았다.

7일 미술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김영욱 간송미술관 전시교육팀장은 “조선 후기에 부채는 단순 소품이나 생활용품을 넘어 예술품으로 각광받았다”며 “문인들은 부채를 선물로 주고받으며 교류했고, ‘청죽’은 조선과 청나라의 문인 간에 교류가 활발했음을 보여주는 자료”라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18세기 이후 조선과 청나라의 선면서화 54건을 선보인다.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의 작품을 비롯해 오세창, 안중식, 조석진 등 널리 알려진 서화가들의 작품을 아우른다. 조선 화가 혜천 윤정(1809∼?)이 중국 강남 지방의 절경을 그린 ‘삼오팔경’ 등 23건도 최초로 공개된다.

특히 조선 후기 서화의 거장 추사 김정희(1786∼1856)와 관련된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추사가 짙은 먹으로 투박하게 그린 버섯, 흐린 먹으로 날렵하게 그린 난꽃이 부채 한 폭에 어우러지는 ‘지란병분(芝蘭並芬)’ 등을 선보인다. 추사를 스승으로 모셨던 우봉 조희룡(1789∼1866)의 ‘난생유분(蘭生有芬)’과 ‘분분청란(芬芬靑蘭)’이 위아래로 함께 전시돼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다.

김 팀장은 “추사로부터 배운 것이 고스란히 반영된 ‘난생유분’과 달리 추사와 엮여 덩달아 유배된 뒤 그린 ‘분분청란’은 스승의 화풍에서 탈피한 경향이 드러난다”며 “울분으로 인해 잡초처럼 어지러이 표현됐다”고 했다. 다음 달 25일까지.

#간송미술관#부채#예술품#선우풍월#전시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