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꽃의 언어이자 패션 아이템… ‘향기’의 문화사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4월 12일 0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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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자 출신 천연 조향사 저자
다채로운 향기 내는 식물 이야기
◇향기/엘리스 버넌 펄스틴 지음·김정은 옮김/360쪽·2만5000원·열린책들

함께 산책하는 강아지가 미치도록 좋아할 때가 있다. 이른 아침, 아직 이슬이 마르기 전에 동네 앞 야산을 산책할 때다. 비가 그친 직후면 더 ‘환장’한다. 온갖 풀잎의 냄새를 맡고, 온몸을 비비고 땅에 구르는데 마치 디즈니랜드에서 미키마우스를 만난 아이들 같다고 할까.

야생동물 생물학자로 일하다 ‘향기’의 매력에 빠져 천연 조향사로 전업한 저자가 다채로운 향기를 내는 식물에 관해 쓴 책이다. 식물도감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유향과 몰약, 향신료, 향수 등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역사와 문화, 생태, 산업, 첨단 기술까지 다양한 분야를 넘나든다. 인류의 문화사에서 ‘향기’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 가장 유명한 향수 중 하나인 샤넬 No.5는 분리된 향기 분자의 효과에 의존한 최초의 향수는 아니지만, 현대 향수의 상징이 되었다. 꽃향기가 나는 여성에게 염증을 느낀 코코 샤넬은 자신을 위해서 1920년대의 새로운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환상의 향수 제작을 의뢰했다. 그녀가 원한 향수는 여성스러우면서 깨끗하고 우아한 향이 나고, 진취적인 여성들에게 팔릴 만한 향수였다.”(12장 ‘향기의 세계: 산업과 패션’에서)

분명 ‘향기 나는 식물’에서 시작된 이야기인데 읽다 보면 선사 시대부터 산업화 시대에 이르기까지 식물과 이어진 사람들의 신앙과 권력, 부, 중독, 혐오, 패션 등 온갖 모습을 보게 된다. 저자는 식물이 향기를 만드는 것은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꽃가루 매개 동물과 포식자인 나방, 딱정벌레, 세균과 곰팡이, 꿀벌과 파리 때문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내는 향기로 꽃가루 매개 동물을 끌어들이고, 질병과 싸우고, 초식동물을 쫓아내는 등 상호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사람도 누구나 자신만의 향기가 있지만 상호작용을 통해 누군가의 것은 향기로, 누군가의 것은 냄새라고 불린다. 앞에 ‘좋은’ ‘맑은’이란 수식어가 붙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더러운’ ‘고약한’이 붙는 사람도 있다. 향기로웠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추한 냄새를 내는 사람으로 바뀌고, 그 반대도 허다하다. 지금 향기를 내고 있는가, 아니면 냄새를 피우고 있는가. 어느 쪽인가.

#향기#천연 조향사#식물#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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