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하이라이트’展 주목할 작품 8選
소장품 상설전 서울-과천 나눠 개막… 서울관, 1960∼2010년대 86점 전시
최욱경 등 여성 미술가 작품 재조명… 백남준 ‘잡동사니 벽’ 30년만 재전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소장품 상설전 ‘한국현대미술 하이라이트’전에서 볼 수 있는 주요 작품. 이불의 ‘사이보그 W5’. 전시는 196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소장품 86점을 소개한다. 이불스튜디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 상설전이 5년 만에 부활했다. 과천관은 한국 근현대미술 100년사를 조명하는 ‘한국근현대미술’전을 1, 2부로 나누어 소개한다. 서울관은 1960∼2010년대 대표작 86점을 담은 ‘한국현대미술 하이라이트’전을 열었다. 1일 과천관 1부와 서울관의 상설전이 먼저 개막했고, 과천관 2부 전시는 다음 달 26일 공개 예정이다. 먼저 전체 윤곽이 드러난 서울관 전시작 중 눈여겨볼 ‘노른자 작품’ 8점을 꼽아 봤다.
① 이응노 ‘군상’(1986년)
서예와 수묵화는 물론이고 일본에서 서양화를 배우고, 젊은 시절 종로에서 상점과 극장의 간판까지 그렸던 ‘평생 화가’ 이응노의 대표작이다. 1958년 프랑스로 이주한 뒤 추상화가 세계적으로 유행하자 한국식 ‘문자 추상’과 화폭을 글자 같은 사람들로 가득 채운 ‘군상’ 시리즈로 주목받았다. 2017년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회고전이 열렸다. ② 최욱경 ‘미처 못 끝낸 이야기’(1977년)
1950∼70년대 추상화를 그린 미술가들은 남성 작가 중심으로 조명됐다. 이와 달리 이번 전시는 입구에 들어서면 이성자와 최욱경의 회화 2점이 먼저 관객을 맞이한다. “여성 미술가를 제대로 보자”는 배명지 학예연구사의 의도가 담겼다. 폭 2m가 넘는 캔버스에 불꽃 같은 형상들이 에너지를 뿜어내는 대작이다.
③ 이우환 ‘선으로부터’(1974년)
현상학의 영향을 받은 미니멀리즘 예술이 중요하게 떠오르던 1960년대. 이우환은 일본에서 선불교를 토대로 한 ‘모노하’ 운동의 이론을 제시해 현재 세계적인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작품이나 사물의 ‘내용’보다 우리가 그것을 마주하면서 생기는 ‘만남’이 의미를 만든다는 미학을 이 작품은 캔버스에 푸른 선을 긋는 ‘행위’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④ 박생광 ‘무속3’(1980년)
흑백 위주의 수묵화가 중심이던 1981년 팔순이 가까웠던 화가 박생광은 강렬한 원색으로 불교, 무속, 한국사 등의 소재를 대작으로 풀어낸 백상기념관 개인전으로 미술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 무렵 ‘혜초’ ‘명성황후’ ‘녹두장군’ 등을 연달아 발표하고 파리 르살롱 특별전에도 초대를 받는다. 이 작품은 ‘이건희 컬렉션’으로 미국 워싱턴 순회전에 출품돼 9월까지만 감상할 수 있다. ⑤ 황재형 ‘황지330’(1981년)
황재형의 ‘황지330’.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1980년 강원 태백 황지탄광에서 매몰 사고로 숨진 광부의 작업복을 176cm 높이 캔버스에 그렸다. 낡아서 해어지고 구겨진 작업복이 커다란 산맥처럼 자세히 묘사됐고, 광부의 이름표에는 그늘이 져 있다. 고단한 삶의 흔적 속 비극과 숭고함을 담아 화단의 주목을 받았지만, 작가는 ‘광부의 삶을 대상화한 것 아닌가’라는 자괴감에 직접 탄광촌으로 이주해 ‘광부 화가’가 됐다.
⑥ 신학철 ‘한국근대사―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1989년)
신학철의 ‘한국근대사―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릴 수 있는가’라는 한강의 질문을 그림으로 표현한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화가는 동학농민운동, 의병 항쟁, 4·19혁명 등의 장면들을 발췌해 휘몰아치는 덩어리로 그렸다. 목이 잘린 인물이 작은 사람들을 붙잡고 거대한 힘을 일으키는 듯한 모습이다. ‘이건희 컬렉션’ 순회전 준비로 한국을 찾았던 영국박물관 큐레이터가 이 작품을 보고 “붉은색과 형상이 아름답다”고 감탄하며 순회전에 포함시키지 못해 아쉬워했다는 후문이다.
⑦ 백남준 ‘잡동사니 벽’(1995년)
백남준의 ‘잡동사니 벽’.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첫 전시 뒤 30년 만에 다시 빛을 보는 작품이다. 독일 볼프스부르크 미술관 개인전에서 발표한 작품으로, 이 지역에서 생산하는 폭스바겐 자동차와 한국의 전통 가마, 불상, 코끼리가 리드미컬하게 쌓여 있다. 배 학예연구사는 “30년 전 작품 설치 영상부터 상세한 설치 가이드라인, 자동차 부품이 녹슬면 대체할 수 있는 여유분까지 작품과 함께 들어 있었다”며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작품 보존이 되도록 고민한 흔적이 인상 깊었다”고 했다.
⑧ 이불 ‘사이보그 W5’(1999년)
비닐 속에 담긴 생선이 부패해가는 설치 작품이나, ‘낙태’ 퍼포먼스로 충격을 안겼던 이불 작가는 이후 문명과 유토피아의 불완전함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매끈한 흰색으로 제작돼 예뻐 보이지만, 한쪽 팔과 다리가 잘려 있는 ‘사이보그’의 모습은 이상향을 꿈꾸지만 늘 실패하는 인류 역사의 단면을 담고 있다. 지하 전시장으로 내려가는 계단 바로 앞에 설치돼 관객을 놀래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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