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의 역사’ 크라잉넛 30년… “함께 울고 웃는 노래 만들고파”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5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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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커트 코베인 추모 공연서 ‘난동’ 부리며 등장한 악동들 밴드
“지금도 기획-홍보까지 직접 작업… ‘변온동물’처럼 생존 노하우 얻어”
데뷔 30주년 기념 신곡 ‘허름한 술집’… “퇴근뒤 한잔 같은 위로가 됐으면”

올해로 데뷔 30주년을 맞은 인디 밴드 ‘크라잉넛’ 멤버들이 9일 서울 마포구 합주실에 모였다. 왼쪽부터 이상면(기타), 한경록(베이스), 김인수(키보드), 박윤식(보컬, 기타), 이상혁(드럼). ‘인디의 살아 있는 역사’로 평가받는 이들은 “30년간 그랬듯 공연장에서 ‘뛰는 무대’로 관객들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올해로 데뷔 30주년을 맞은 인디 밴드 ‘크라잉넛’ 멤버들이 9일 서울 마포구 합주실에 모였다. 왼쪽부터 이상면(기타), 한경록(베이스), 김인수(키보드), 박윤식(보컬, 기타), 이상혁(드럼). ‘인디의 살아 있는 역사’로 평가받는 이들은 “30년간 그랬듯 공연장에서 ‘뛰는 무대’로 관객들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1995년 서울 홍익대 인근 라이브클럽 ‘드럭’.

30년 전 이곳에서 열린 미국 록밴드 너바나의 리더 커트 코베인(1967∼1994) 1주기 추모 공연은 대한민국 음악계에서 인디 문화가 태동한 순간으로 꼽힌다. 홍대의 내로라하는 밴드들이 모여 뜨거운 존재감을 뿜어냈다.

당시 공연 도중 무대에 난입해 기타와 앰프를 마구 때려 부순 녀석들이 있었다. 바닥 한편에 쌓인 맥주캔 무더기에도 뛰어드는 등 그야말로 ‘난동’을 부렸다. 화가 난 클럽 사장이 “니들, 뭐하는 놈들이냐?”고 하자, 뻔뻔하고 패기 넘치는 답이 돌아왔다.

“저희는 밴드예요!”

그 악동들이 이후 강산이 3번 바뀌는 동안 한국 인디 문화를 이끌어 가는 밴드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당시 사장이 고소는커녕 오디션을 보게 했던 그들은 ‘말 달리자’ ‘밤이 깊었네’ ‘룩셈부르크’ ‘명동콜링’ 등의 노래들로 세상을 수놓았다. 이젠 인디 밴드의 상징이 된 ‘크라잉넛’이다. 걷는 길 자체가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인 그들을 9일 서울 마포구 합주실에서 만났다.

● 30년간 지켜 온 ‘야생화’ 정신

“이렇게 오래 활동할 줄은 몰랐어요, 하하.”

크라잉넛은 “데뷔 30주년이란 게 실감이 안 난다”면서도 “인디의 역사를 증언할 수 있는 ‘증언 밴드’가 됐다는 게 뿌듯하다”고 입을 모았다.

크라잉넛은 초중고교 동창인 박윤식(49·보컬, 기타)과 이상면(49·기타), 이상혁(49·드럼), 한경록(48·베이스) 등 초대 멤버가 그대로다. 드럭에서 일하던 ‘공익 형’ 김인수(51·키보드)도 1999년 2집 때 합류한 뒤 함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오랫동안 합을 맞춘 공력은 곳곳에서 묻어났다. 인터뷰도 ‘친구들의 수다’에 가까웠다. 박윤식이 “30년쯤 되면 목소리도 안 나오고, 배 나오고, 머리도 벗겨질 줄 알았는데 아직 괜찮다”며 너스레를 떨자, 이상면이 “덜 벗겨진 거지”라고 응수했다.

“1980년대 롤링스톤스가 미국 투어할 때 국내 음악 잡지에 ‘마흔 넘어서도 록을 한다’고 했는데, 우리는 (뭐지)….” 겸연쩍은 듯한 김인수의 말에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까지 끈끈한 팀워크를 유지한 비결은 뭘까. 역시 서로의 성격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오래 해왔기 때문에 어느 부분에서 쟤가 화가 날지를 잘 알아요. 싸워 봤자 화해하는 것도 귀찮고, 그냥 안 싸우고 화해도 안 하면 되죠.”(이상혁)

크라잉넛은 30년 내내 대형 자본에 기대지 않고 독립적인 음악을 만드는 ‘인디펜던트(Independent)’ 정신을 유지해 왔다. 잘 팔릴 음악보단 에너지 넘치고, 덜 다듬어졌더라도 싱그러운 ‘야생화’ 같은 음악 세계를 지켰다. 한경록은 “인디 밴드이다 보니 음악뿐만 아니라 기획, 홍보까지 직접 해야 했다”며 “이런 경험치가 쌓여 변화에 적응하는 ‘변온동물’처럼 살아남을 노하우를 얻은 것 같다”고 했다.

크라잉넛 하면 떠오르는 곡 ‘말 달리자’ 역시 이런 야생의 반항기에서 나왔다. ‘음악 좀 안다’ 하는 형들의 “너희가 하는 건 펑크록이 아니야”란 훈수에, ‘닥쳐’라고 통쾌하게 답한 것이라고 한다. 이들은 “펑크록 밴드는 공장 노동자여야 하고, 머리는 어때야 한다는 등의 프레임에 갇히기 싫었다”고 회상했다.

● “함께 울고 웃는 노래 만들고파”

지난달 28일 발표한 신곡 ‘허름한 술집’은 20대의 혈기왕성한 노래는 아니다. 차분하지만 정겨운 정서가 돋보인다. “간헐적 단식 해보려는데/동네 친구들이 모여드네” ‘빨간 뚜껑 소주’를 먹던 기찻길 술집 등 30년 동안 동고동락했던 장소들을 소재로 만들었다.

뮤직비디오도 홍대 문화공간 ‘제비다방’에서 구형 스마트폰으로 찍어 레트로한 느낌을 강조했다. 한경록은 “동네에 오래 있었던 친근한 공간을 ‘허름한 술집’으로 표현했다”며 “이 노래가 ‘퇴근 뒤 한 잔’ 같은 위로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크라잉넛은 올해 데뷔 30주년을 기념하는 여러 프로젝트도 진행할 예정이다. 홍대 클럽들과 상생할 수 있는 ‘연중 공연’은 물론이고 홍대 갤러리와 협업해 인디의 역사를 정리하는 전시도 준비하고 있다. 그런 크라잉넛이 앞으로 걸어갈 길은 어떤 모습일까.

“대단한 히트곡보다는 이 시대와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노래들을 만들고 싶어요. 일단 30주년 찍었으니 31년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초심을 잃지 않겠습니다.”(한경록, 이상혁)

#크라잉넛#인디 음악#30주년#홍대 문화#야생화 정신#독립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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