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금강산은 다음 달 6일(현지 시간) 프랑스에서 열리는 제47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확실시된다. 김지현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정책팀장은 “세계유산위원회에 북한 우방국은 베트남뿐이라 지지 교섭 없이 그대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북한이 제출한 금강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신청서는 무려 668쪽이었어요. 무척 공들인 상차림이죠. (신청서를 보면) 금강산 산사(山寺)들의 가치를 입증하고자 한국 유네스코 세계유산 ‘산사’(2018년)와 철저히 비교했어요. 유산 등재에 대한 김정은 정권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지난달 우리나라 울산 반구천 암각화와 북한 금강산이 유네스코 자문·심사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로부터 ‘등재 권고’ 판단을 받으며, 다음 달 두 유산 모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으로선 ‘고구려 고분군’(2004년) ‘개성역사유적지구’(2013년)에 이은 3번째 세계유산이 된다.
5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지현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정책팀장(43)은 이런 상황에 대해 “4월 백두산의 북한 쪽 땅이 북한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에 등재돼 겹경사를 맞았다”며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인 묘향산과 칠보산도 세계유산 등재를 노리는 등 각별한 관심을 쏟고 있다”고 설명했다.
2008년부터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서 일해온 김 팀장은 지난해 3월 국제 학술지에 논문 ‘김정은 정권 아래 북한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관련 유산법 및 정책 변화’를 발표하기도 했다. 김 팀장은 한국위원회와 무관한 연구자의 시각이란 점을 강조하며 “북한이 과거와 달리 국제사회에 참여해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겠다는 의지가 최근 분명해졌다”고 했다.
실제로 다음 달 금강산이 등재되면 2012년 김정은 집권 이전 4건뿐이던 북한 유네스코 유산은 16건으로 늘어난다. 문화유산에 대한 북한 정책이 바뀌었단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1994년 제정된 북한 ‘문화유물보호법’은 2012년 무형유산을 포괄하는 ‘문화유산보호법’으로 개정됐다. 2015년 다시 ‘민족유산보호법’으로 바뀌며 자연유산도 포함시켰고, ‘세계유산’이란 표현도 명시했다. 김 팀장은 “북한이 법률에 명확한 조문을 마련해 국제사회의 지원을 모을 기반을 다졌다고 본다”고 했다.
특히 북한은 최근 자연유산 등재에 적극 힘을 쏟고 있는 분위기. 등재 시 ‘외화벌이’에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김 팀장은 “관광산업은 드물게 대북 제재가 적용되지 않는 분야다. 큰돈 들이지 않고 가진 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게 자연 관광”이라며 “북한은 2018년 법안에 ‘민족유산 보호사업에 대한 투자 원칙’을 추가해 적극 발전시킬 의지를 드러냈다”고 설명했다.
이는 이달 원산 갈마 해안관광지구 개장 등 북한이 외국인 대상 관광산업을 활성화하려는 기조와도 연결된다. 김 팀장은 “북한은 세계유산 등재가 민족적 자부심을 고양하는 동시에 돈이 되리라고 기대하는 것 같다”고 봤다.
올해 함께 유네스코 유산이 될 백두산과 금강산은 북한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영산들. 그런데 백두산보다 금강산을 먼저 세계유산 등재 신청한 이유는 뭘까. 김 팀장은 백두산을 두고 벌어진 중국과 북한의 ‘신경전’을 하나의 이유로 꼽았다.
“중국 영토가 4분의 3인 백두산을 세계유산에 등재하려면 양국이 손잡고 ‘초국경유산’으로 신청한 뒤 추후 보존·관리도 함께 해야 해요. 그러나 북한은 중국의 자국 중심적인 역사문화적 해석에 단호하게 선을 긋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 백두산은 ‘창바이산(長白山)’으로 지난해 3월 세계지질공원에 별도 등재돼 있다.
다만 문화유산의 보존·관리를 위해 국제사회와 얼마나 협력할지는 미지수다. 김 팀장은 “북한은 2018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 목록으로 ‘씨름’을 우리나라와 공동 등재했지만 그 뒤 연락이 끊겼다”고 설명했다. 정치적 상황에 따른 한계도 명확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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