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잔의 별’ 17세 발레리노 박윤재, 세계 러브콜 속 미국행 택한 이유는…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7월 3일 15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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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경기 성남아트센터 연습실에서 만난 박윤재 발레리노는 “먼 미래엔 아이들을 가르쳐보고도 싶다”며 “제대로 재능을 펼치지 못하는 원석같은 아이들이 반짝반짝 빛날 수 있도록 돕고 싶기 때문”이라고 미소 지었다.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3일 경기 성남아트센터 연습실에서 만난 박윤재 발레리노는 “먼 미래엔 아이들을 가르쳐보고도 싶다”며 “제대로 재능을 펼치지 못하는 원석같은 아이들이 반짝반짝 빛날 수 있도록 돕고 싶기 때문”이라고 미소 지었다.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올해 2월. 세계 최고로 꼽히는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의 발레 학교 교장은 17세 한국인 발레리노에게 입학을 권하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윤재 군이 와도 사실 더 배울 건 없을 겁니다.”

185cm의 큰 키에 탄탄한 기본기, 섬세한 감정선까지 갖춰 무용계에선 이미 ‘완성형 인재’라고 평가받는 박윤재 군(17)의 이야기다. ‘전 세계 무용수들의 등용문’으로 불리는 로잔발레콩쿠르에서 한국 남자 무용수 최초로 1위를 차지한 뒤 세계적인 발레 학교에서 러브콜이 쏟아졌다. 3일 경기 성남아트센터에서 만난 박 군은 “영국 로열발레 스쿨 등 많은 곳에서 감사하게도 제안을 주셨다. 그중 가장 행복하게 춤출 수 있는 곳을 골랐다”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최종 결정은 ‘미국행’이다. 최근 서울예고에서 나와 9월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BT)의 발레 학교인 JKO스쿨에 입학한다. 한국인 발레 스타 서희, 세계적 발레리나 이자벨라 보일스턴 등을 배출한 학교다. “지난해와 올해 ABT 무용수들의 내한 공연을 보면서 ‘참 즐겁게 춤춘다’ 느꼈어요. 많은 공연을 봤지만 군무진까지 빠짐없이 행복해 보이는 건 처음이었어요. ‘여기다’ 싶었죠.”

미국으로 가기 전까지 국내 무대에서 그를 만날 기회는 많지 않다. 이달 26, 27일 성남아트센터에서 열리는 갈라 공연 ‘2025 발레스타즈’는 그중 하나다. 올 5월 스페셜 게스트로 잠깐 무대에 섰고, 정식 공연은 콩쿠르 우승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스타 발레리노’ 전민철이 지난해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 입단 예정 소식이 알려진 직후 출연한 공연이기도 하다. 박 군은 “관객으로 자주 왔던 공연장이다. 객석에서 볼 때 정말, 정말 큰 무대였다”고 말했다.

박 군은 콩쿠르 우승 기자회견에서 ‘꿈의 배역’으로 꼽았던 ‘돈키호테’ 바질 역을 선보일 예정이다. 또 다른 유망주이자 “둘도 없는 친구”인 이채은 양과 돈키호테 3막 그랑 파드되로 호흡을 맞춘다. 한 손 리프트, 피쉬 다이브 등 고난도 기교가 특징이다. 그는 “어머니께서 보여주시는 영상으로 발레를 접하던 꼬마 때부터 좋아했던 배역”이라며 “왕자나 귀족과 달리 밝게 춤추면서 자유롭게 뽐내는 느낌이 좋다”고 했다.

국내 첫 정식 무대를 앞둔 한국 남자 무용수 최초 로잔발레콩쿠르 1위 박윤재 발레리노.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국내 첫 정식 무대를 앞둔 한국 남자 무용수 최초 로잔발레콩쿠르 1위 박윤재 발레리노.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콩쿠르 결선 무대를 빛낸 ‘파리의 불꽃’ 중 남자 바리에이션과 컨템포러리 발레 ‘투 플라이 어게인’(To Fly Again)도 무대를 장식한다. ‘투 플라이 어게인’은 로잔발레콩쿠르 비디오 심사로 제출한 작품. 제32회 로잔발레콩쿠르 입상자이자 현재 서울예고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최희재 안무가가 박 군을 위해 안무했다. 다소 느릿한 박자감에 물 흐르듯 자유롭고 섬세한 움직임을 요한다. 박 군은 “굴레에서 벗어나 앞으로 달려가는 듯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타이즈에 부스러기 묻는 게 싫어서 에너지바도 안 먹을 정도로 예민해요. 또래보다 힘과 테크닉이 부족하다 느껴서 자책도 자주 하고요. 하지만 이 작품을 출 땐 ‘나는 왜 안 되지’ 하는 생각에서 벗어나요. 제목처럼요.”

첫 공연을 앞두고 그가 느끼는 떨림은 긴장이 아닌 설렘이다. 박 군은 “무대를 즐기기 시작한 건 오래전 일은 아니”라면서 지난해 동상을 받은 제54회 동아무용콩쿠르를 떠올렸다. 그야말로 ‘애증의 콩쿠르’라는 것. 그는 “중학생 때 실수를 너무 많이 해서 악몽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지난해 콩쿠르에서 ‘지젤’의 알브레히트 왕자 독무를 추면서 처음으로 무대를 온전히 느꼈다”며 “전막으로 가장 도전해보고 싶은 것도 ‘지젤’이 됐다”고 회상했다.

다음 달엔 싱가포르에서도 공연이 예정돼있다. 요즘엔 자신도 잘 모르던 공연 일정을 기사로 먼저 접할 때도 있단다. 뜨거운 관심과 기대가 부담스러울 법도 한데, 박 군은 “더 열심히 할 원동력이 된다”고 담담히 말했다.

“무용수라는 직업은 수명이 짧은 편이니 언젠가 관객이 저를 기억하지 않는 순간이 오겠죠. 그렇다 해도 마치 한 자리에서 오래도록 빛나는 별처럼, 제 자리를 지키면서 끝까지 춤출 수 있도록 노력할 거예요.”

#박윤재 군#로잔발레콩쿠르#한국 남자 무용수 최초 1위#JKO스쿨 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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