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틀은 견고하다. 정해진 기준에 맞추길 강요하지만 모두가 같을 순 없다. 조금 다른 존재지만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간 이들을 그린 공연을 살펴보자.
● 뮤지컬 ‘위키드’
묵직한 메시지-매혹적인 선율이 빚어낸 명작
세상과 인생을 통찰하는 촘촘한 이야기, 매력적인 음악,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은 황홀한 무대. 뮤지컬이 선사할 수 있는 매력을 한껏 발산한다.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서쪽 마녀 엘파바의 이야기를 신선하게 풀어냈다. 13년만의 오리지널 내한 공연으로, 탄탄한 기량을 가진 배우들이 무대를 꽉 채운다.
기숙사 방에서 엘파바(왼쪽)와 글린다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에스앤코 제공세상이 정한 기준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직시하며 나아가라고 응원한다. 악한 존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주고 조금이라도 다른 존재에게 가해지는 가혹함도 비춘다. 마음을 나눈다는 것,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짚어내며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기분 좋은 유쾌함을 선사하는 가운데 뭉클하면서도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팽팽한 긴장 속에서 마주한 엘파바(오른쪽)와 마법사. 에스앤코 제공엘파바가 하늘로 치솟으며 ‘Defying Gravity(중력을 벗어나)’를 뜨겁게 부르는 장면은 강렬하다. ‘Popular(파퓰러)’, ‘For Good(널 만났기에)’ 등 여러 넘버도 귀를 즐겁게 사로잡는다. 글린다가 타고 내려오는 둥근 버블머신에서 비눗방울이 연이어 풍성하게 터져 나오고, 12m 넘는 크기의 용이 불을 뿜는가 하면 원숭이들이 곳곳을 날아다니는 등 동화 속 세상이 입체적으로 펼쳐지는 것 같다. 에메랄드빛 초록을 다채롭게 변주한 무대 디자인도 화려함을 더한다.
엘파바(오른쪽)와 글린다는 서로의 미래를 응원한다. 에스앤코 제공공연을 처음 보는 관객이라면 ‘오즈의 마법사’ 줄거리를 다시 살펴보고 가는 게 좋다. 정교하게 맞물리는 이야기 구조를 확인할 수 있어 보다 흥미롭게 작품을 즐길 수 있다.
10월 26일까지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공연한다. 부산 드림씨어터에서 올해 11월 막을 올릴 예정이며 대구 계명아트센터에서 내년 1월 관객과 만날 계획이다. 8세 이상 관람 가능.
● 연극 ‘렛미인’
외로운 존재들의 처연하고 서늘한 포옹
하얀 눈이 쌓인 가운데 자작나무가 빼곡히 들어찬 스웨덴의 숲 속. 살기 위해 피가 필요한 뱀파이어 소녀 일라이와 학교 폭력에 시달리는 소년 오스카가 우연히 만난다. 오스카는 낯설지만 신비로운 분위기를 지닌 일라이에게 이끌린다. 일라이 역시 여리지만 순수한 오스카와 함께 하는 시간을 기다리게 된다. 숲에서 사람들이 연달아 목숨을 잃고 경찰이 수사에 나서는데….
연극 ‘렛미인’에서 일라이(권슬아·왼쪽)와 오스카(안승균)가 처음 만나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신시컴퍼니 제공외로운 존재들이 서로에게 다가가며 조심스레 보듬어가는 과정을 몽환적이면서도 처연하게 그렸다. 인물들이 느끼는 고독과 분노, 공포 등은 대사 대신 유연하면서도 절도 있는 안무로 표현했다. 시각적으로 그린 여러 감정은 서정적으로 다가온다.
뮤지컬 ‘원스’의 연출가 존 티파니, 안무가 스티브 호겟이 손을 잡은 작품이다. 2013년 스코틀랜드 국립극단이 제작해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호평 받았다. 국내에서는 2016년 초연한 후 9년 만에 관객을 다시 만나게 됐다.
일라이(백승연·왼쪽)와 오스카(천우진)는 자작나무 숲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신시컴퍼니 제공몽환적인 음악은 신비로운 분위기와 섬뜩한 아름다움을 고조시킨다.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로서 견뎌야 하는 외로움과 아픔 그리고 치유를 섬세하고 고요하게 조망하듯 비춘다. 간결하고 세련되게 구현한 무대는 이야기를 또렷하게 부각시킨다.
오스카(안승균)가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에게 맞서는 상상을 안무로 표현했다. 신시컴퍼니 제공일라이 역은 권슬아 백승연, 오스카 역은 안승균 천우진이 각각 맡았다. 하칸은 조정근 지현준이 연기한다. 오스카 엄마 역은 박지원, 함버그 경찰서장 역은 차정현이 맡았다.
백승연은 시간을 뛰어넘은 존재이자 야생의 소녀 같은 일라이를 맞춤으로 연기한다. 안승균은 상처받은 오스카의 내면과 분노, 사랑에 설레는 맑은 모습을 매끄럽게 표현했다. 지현준은 일라이를 위해 헌신하지만 나이 들어 더 이상 마음만큼 해줄 수 없게 되자 결단을 내리는 하칸을 설득력 있게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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