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효림의 베스트셀러 레시피] 많은 사람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는 베스트셀러. 창작자들은 자신이 만든 콘텐츠가 베스트셀러가 되길 꿈꾸지만, 실제로 실현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이 희귀한 확률을 뚫고 베스트셀러가 된 콘텐츠가 탄생한 과정을 들여다본다. 창작자의 노하우를 비롯해 이 시대 사람들의 욕망, 사회 트렌드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식당을 네 번 열었지만 모두 쫄딱 망했다.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하다 깨달았다. 자신을 포함해 ‘돈 못 버는 머리’를 가진 사람들끼리 ‘돈 못 버는 아이디어’로 회의하고 거기에 투자했다는 것을. 이에 책으로 눈을 돌렸다. 1000권 가량 읽었던 그는 “왜 책이 아닌 사람에게 물었을까”라며 탄식했다. 이길 방법을 찾으려 다시 책을 읽었다.
지금 그는 연간 매출 10억 원을 올리는 메밀국수 식당을 운영하고, 그가 쓴 여러 책이 베스트셀러가 돼 전국 곳곳으로 강연을 다닌다. 책 판권은 일본 러시아 대만 베트남에 판매됐다. 매일 각오를 다지며 올린 아침긍정확언 영상으로 유튜브 수익도 생겼다. 개그맨이자 작가인 고명환 씨(53)의 이야기다. 고 작가는 “책이 시키는 대로 하니 돈이 따라왔다. 너무 신기하다”고 말한다.
고명환 작가가 ‘고전이 답했다: 마땅히 가져야 할 부(富)에 대하여’에 사인하고 있다. 그는 1만 100권에 직접 사인해 전작 사인 기록(1만 권)을 깼다. 라곰 제공
그가 책을 통해 돈 버는 법을 깨달은 바를 담은 ‘고전이 답했다: 마땅히 가져야 할 부(富)에 대하여’(라곰)는 이달 2일 출간되자마자 1만5000권이 판매되며 단숨에 교보문고 종합 베스트셀러 2위에 올랐다.(국내 출판계의 베스트셀러 기준은 책 판매량 1만 권이다.)
고 작가와 최지연 라곰 대표(43)를 11일 전화 인터뷰했다.
이 책은 고 작가가 지난해 8월 출간한 ‘고전이 답했다: 마땅히 살아야 할 삶에 대하여’(라곰)의 후속작이다. 전작은 지난달 말 기준으로 15만 권이 판매됐다. 지난해 말 고 작가는 한강 작가와 함께 교보문고가 선정한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그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와 같은 상을 받았다는 소식은 큰 화제가 됐다. 한데 기쁜 건 딱 하루였단다.
“다음날부터 지옥이 시작됐어요. 부담감에 짓눌려서 글을 못 쓰겠더라고요. 잘 쓸 수 있을지 걱정만 되고요.”
당초 후속작을 낼 계획은 없었다고 한다. 고 작가와 최 대표가 이야기를 나누다 구상하게 됐다. 최 대표는 “새 책에서도 고전을 다룰텐데, 고전을 돈과 연결시키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고 작가가 평소 돈 얘기를 재밌게 하는 걸 눈여겨 본 것. 고 작가는 바로 수락했다. 그리고 외쳤다. “부제는 ‘마땅히 가져야 할 부에 대하여’로 합시다!”
지난해 10월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수상 후 부담감 때문에 그는 올해 초까지 끙끙 앓았다고 한다.
“간신히 써 놓고도 ‘올해의 작가상을 받았는데 이 정도 밖에 못 쓰면 안 되지’라는 생각만 들더라고요.”
이를 본 최 대표가 말했다.
“어렵게 쓰려고 하지 마세요. 그러다 글 못 쓰게 된 작가들이 많아요. 이전처럼 눈높이를 낮추고 쉽게 쓰세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고 작가는 “나도 모르게 다른 작가의 글을 흉내 내고 있더라”며 웃었다.
‘고전이 답했다 :마땅히 가져야 할 부(富)에 대하여’ 책표지. 라곰 제공 새 책에는 ‘고도를 기다리며’(사뮈엘 베케트) ‘군주론’(마키아벨리),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장 폴 사르트르), ‘이기적 유전자’(리처드 도킨스)를 비롯해 ‘현명한 투자자’(벤저민 그레이엄), ‘린치핀’(세스 고딘) 등 문학 철학 과학은 물론 경제경영까지 59권을 풀어냈다. 모두 고 작가가 직접 골랐다. 그는 “전작을 쓸 때와 마찬가지로 영감을 준 책은 최신작이라도 고전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그리스인 조르바’(니코스 카잔차키스), ‘데미안’(헤르만 헤세)은 이번에도 포함됐다. 고 작가는 “좋은 문장은 수천 번 얘기해도 과하지 않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2년마다 다시 읽는다”고 했다.
고 작가는 ‘돈키호테’에서 나이 든 돈키호테가 세상으로 뛰어든 것을 가리키며 ‘돈도 기세다. 움츠린 사람에게 돈이 들어올 리 없다’며 당당한 태도를 강조한다. 찰리 멍거의 ‘가난한 찰리의 연감’에서 ‘다른 사람들이 동의하거나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서 자신이 맞거나 틀린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라. 중요한 것은 오직 분석과 판단의 정확성이다’를 소개하며 무작정 남들을 따라가면 평균적인 부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걸리버 여행기’를 통해 자기 안에 숨어 있는 힘을 밖으로 꺼내라고 당부한다.
그는 ‘위대한 개츠비’(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와 ‘이노크 아든’(앨프레드 테니슨)을 통해 소유에 대해 질문한다. 돈을 번 뒤 화려한 파티를 하며 산 개츠비는 데이지가 자신에게 오길 바란다. 데이지의 남편까지 찾아가 데이지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배가 난파돼 십여 년 간 무인도에서 살다 구조돼 고향으로 돌아온 이노크는 아내가 재혼해 행복하게 사는 걸 보고 아내와 아이들 앞에 나타나지 않고 멀리서 행복을 빈다. 개츠비의 장례식을 찾는 이는 아무도 없지만 이노크의 삶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성대한 장례식을 열고 애도한다. 소유하려 할수록 갖기 어렵다. 고 작가는 ‘가지지 말고 따라오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장례식을 어떻게 그리고 있을까.
“죽음이 다가오면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 미리 인사하고 싶어요. 이후에는 제가 깨달은 걸 글로 쓰고 싶습니다. 마지막까지 한 발짝 나아가다 죽는 게 제일 잘 죽는 거라고 생각해요. 링거 줄을 주렁주렁 단 채 병실에서 눈 감고 싶지 않습니다.”
고 작가는 2005년 대형 교통사고로 죽음 직전까지 갔다. 당시 의사는 사흘 정도 살 수 있다며 죽음을 준비하라고 했다.
“죽음의 문턱에 서니 무서움도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어요. 다만 남들이 정한 기준대로 산 게 뼛속 깊이 후회됐어요. 왜 내 안에 있는 걸 꺼내지 못했는지 너무너무 아쉬웠습니다. 잠도 못 자고 일해서 산 봉천동 빌라와 석촌호수 옆 아파트 생각은 1도 안 났어요.”
그는 연극을 하고 싶었지만 주위 사람들이 “대학로에서 연극하면 한 달에 50만 원도 못 번다”며 방송국에 진출해야 한다고 해 방송국 공채 개그맨 시험을 봤다. 합격해 TV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주변 사람들이 집을 사야 한다고 해서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못하며 일해 빌라와 아파트를 샀다.
기적적으로 살아 중환자실을 나올 때 그는 결심했다. “내 안에서 솟아나오는 걸 반드시 하나는 하겠다”고. 그는 ‘데미안’에서 가장 가슴에 닿은 한 단어로 ‘내 안’을 꼽는다.
고명환 작가가 ‘고전이 답했다: 마땅히 가져야 할 부(富)에 대하여’가 교보문고 종합 베스트셀러 2위에 오른 걸 보며 보며 기뻐하고 있다. 라곰 제공 이후 그는 책을 읽으며 내면을 응시했다. 안에서 흘러나오는 걸 글로 썼다. 이를 엮어 책을 내자 작가가 됐다. 강연 요청이 이어졌다. 매일 아침긍정확언 영상을 올리자 주위에서 “그런 거 왜 하느냐”며 말렸다. 하지만 하고 싶어서 계속 했고 구독자가 늘면서 달러를 벌게 됐다. 남을 이롭게 해야 돈이 따른다는 걸 깨닫고 좋은 재료로 맛있게 음식을 만들자 식당에 손님이 몰렸다. 그는 인간에게는 상상하지 못한 가능성이 잠재해 있다는 걸 실감한다고 했다. “사람의 뇌에는 1000억 개 이상의 뉴런이 있지만 대부분 제대로 쓰지 못한다고 해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뉴런을 자극하면 새로운 걸 발견하게 됩니다. 제가 식당을 잘 운영하고 작가, 강연자, 유튜버가 될지는 꿈에도 몰랐어요.”
서문에서 독자에게 ‘당신은 원래 큰 사람이다’라고 쓴 것도 이런 이유라고 한다. 그는 최근 읽은 ‘물질의 세계’(에드 콘웨이)에 대해 말했다.
“모래 소금 철 구리 석유 리튬을 다루는데 구리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인공지능(AI) 시대에 AI는 전기 먹는 하마라는데, 전기 시설을 갖추려면 구리가 필요하겠더라고요. 구리에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를 샀어요. 주식 전문가가 아니라 ETF에만 투자하거든요. 최근 미국이 구리에 대한 관세를 50% 올렸다는 기사를 보며 내 머릿속 뉴런이 연결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 분들도 여러 영역에서 뉴런이 연결될 수 있습니다.”
한데 숨 가쁘게 달리며 자신을 너무 몰아세우는 건 아닐까. 그는 후배 진선규 배우 이야기를 꺼냈다.
“선규가 캐나다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에 나갔는데 13㎞ 지점에서 다리에 이상이 생겼대요. ‘지금까지 준비해놓고 이 정도밖에 안 되나’라고 자책하며 달렸답니다. 그런데 37㎞ 지점에서 울음이 터졌대요. 스스로 몰아붙이기만 하고 위로해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엉엉 울며 통곡을 했답니다. 너무 공감됐어요. 그 후론 강연을 마치면 ‘잘했다’며 제 머리를 쓰다듬어줍니다.(웃음)”
신간에는 각 장 마다 ‘내 안에서 솟아나는 그것은 무엇인가?’, ‘나는 성장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등 질문을 넣어 독자가 답을 써 보도록 구성했다. 기준금리, 국채, 레버리지 효과 등 경제·투자 용어 36개도 정리해 ‘부자들의 언어’라는 부록으로 담았다. 고 작가가 이를 설명하는 강연 36개를 촬영해 각각 QR코드도 넣었다.
최 대표는 “후속작은 전작보다 무조건 두꺼워야 한다고 생각해 여러 정보를 담으려 했다”고 말했다. 고 작가는 “부자들은 경제·투자 용어를 라면 이름 술술 읊는 것처럼 일상적으로 말한다. 이런 용어가 입에서 줄줄 나와야 부자의 끝자락에라도 갈 수 있다”고 했다.
신간은 1만100권을 사인했다. 전작을 1만 권 사인한 기록을 스스로 깬 것. 만만치는 않았다. 고 작가는 “파주 ‘지혜의 숲’에 2박 3일간 머물며 사인만 했는데도 3000권이 좀 넘었다. 끝이 안 보이는 것 같았다”며 웃었다.
최 대표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신간 서평단을 1000명이나 모았다. 서평단을 위해 별도로 샘플북 1000권을 만들어 발송하느라 출판사 전 직원이 애썼다. 최 대표는 “대만에서 벌써 신간에 대한 구입 문의가 왔다”고 했다.
고 작가는 ‘고전이 답했다’ 시리즈를 3권을 마지막으로 마무리할 예정이다.
“세 번째 책이 나오려면 3년 정도 걸릴 것 같아요. 다시 책을 쓸 수 있을 만큼 고전을 읽어야 하니까요. 에세이, 글쓰기법 등 여러 책을 꾸준히 내고 싶어요. 그리고 300억 원을 모아 ‘엉망진창 도서관’을 짓는 꿈을 하루 빨리 이루고 싶습니다. 제가 책에서 얻은 걸 많은 분들에게 꼭 돌려드릴 겁니다.”
■고전이 답했다: 마땅히 가져야 할 부(富)에 대하여(라곰·2025년)는….
개그맨이자 작가인 고명환 씨가 고전을 통해 부를 이루는 방법을 정리했다. ‘명상록’(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레프 톨스토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아르투어 쇼펜하우어), ‘눈먼 시계공’(리처드 도킨스) 등 문학 철학 과학을 비롯해 ‘경영의 실제’(피터 드러커), ‘소유의 종말’(제러미 리프킨) 같은 경제경영까지 아우른다.
저자는 인간의 마음,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 자연의 섭리 등을 두루 알아야 부가 흘러가는 걸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람에게는 자신도 모르는 많은 가능성이 있기에 스스로 이뤄낼 수 있는 가치를 지금 버는 돈의 액수로 한정짓지 말라고 당부한다. 외화를 벌겠다는 생각도 하라고 권한다. 자신도 50년간 원화를 벌 생각만 했는데 유튜브, 책 판권 수출을 통해 외화를 벌어보니 부를 바라보는 시야가 확장됐다고 한다.
경기가 좋지 않을 때는 기존의 것을 버리고 새로운 방향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어떤 방해물도 극복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생각을 완전히 버리고, 세상 사람들의 생각을 모두 던져버려라. 그리고 완전히 다른 룰을 사용하라’는 ‘초역 비트겐슈타인의 말’(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을 들려준다.
‘아인슈타인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에 의존하지 말고, 오직 우리가 보는 것에만 의존하라고 가르쳤습니다’(‘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카를로 로벨리)를 소개하며 자기 안에서 솟아오르는 것에 귀를 기울이고 살라고 당부한다. 생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어떤 행동이 필요한지 고민하고 실제로 움직여야 한다.
남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걸 함으로써 부가 따라오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자신을 구하는 유일한 길은 남을 구하려고 애쓰는 것이다.”(‘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이를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라디오에서 우연히 사연을 하나 들었다. 사연을 보낸 이가 주유소에 갔는데 주유기마다 ‘내일부터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대폭 인하되오니 오늘은 꼭 필요한 만큼만 주유하시고 내일 와서 다시 주유하세요’라는 글이 붙어 있었다는 것. 저자는 그 주유소에 꼭 한 번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며 그날 주유소에 들른 사람들의 마음도 비슷했을 것이라 말한다.
투자 5계명도 제시한다. △절대 찾지 않을 돈을 투자하라 △경제·금융에 대해 계속 공부하라. 확신이 생길 때까지 △당장 계좌를 만들어라 △투자를 생활화하라 △수수료에 대한 공부를 꼭 하라.
부록 ‘부자들의 언어’에서 기준금리, 주택청약통장, 기축통화, 주가수익률(PER) 등 경제·투자 용어 36개를 설명한다. 기업공개(IPO)를 ‘기숙사의 오픈 하우스’ 같은 것이라며 저자만의 시각을 담아 이해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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