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다른 성향의 두 마녀가 서로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우정을 쌓아가는 과정을 그린 뮤지컬 ‘위키드’. 에스엔코 제공ⓒJeff Busby
“서쪽의 나쁜 마녀가 죽었다. 애도(哀悼) 따윈 필요 없어.”
환호하는 에메랄드 시티 주민들 사이로, 착한 마녀 ‘글린다’가 거대한 버블머신을 타고 내려온다. 한 아이가 묻는다. “서쪽 마녀와 친구였다는 게 사실인가요?” 글린다는 잠시 표정을 굳히며 과거를 떠올린다. “그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어요….”
12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위키드’는 국내 팬들에게 친숙하면서도 여전히 신선한 매력을 지닌 작품이다. 2013년과 2016년, 2021년 국내 제작진이 선보인 라이선스 공연으로 세 차례 무대에 올랐으며, 지난해 11월 개봉한 동명의 영화는 2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모았다. 이번 공연은 2012년 이후 13년 만에 돌아온 오리지널 영어 버전. 2003년 브로드웨이 초연 20주년을 기념해 시작됐던 순회 공연의 일환이다.
위키드는 고전 동화 ‘오즈의 마법사’(1900년) 속 마녀들을 재해석한 그레고리 매과이어의 동명 소설(1995년)을 원작으로 한다. 마법 재능을 지녔지만 초록빛 피부 탓에 따돌림당하는 서쪽 마녀 ‘엘파바’와 똑똑하고 야심 찬 금발 마녀 글린다의 우정을 그린다.
처음엔 상극이던 두 사람은 갈등을 극복하며 친해진다. 하지만 어느 순간 세상은 엘파바를 ‘사악한(Wicked)’ 마녀로, 글린다를 ‘착한’ 마녀로 규정한다. 관객들은 이를 통해 무조건적인 선과 악의 이분법이 과연 옳은 것인지 스스로 물어보게 된다.
뮤지컬은 블록버스터 작품다운 화려한 무대가 압도적이다. 무대 상단에서 12.4m 길이의 기계 용(龍) ‘타임 드래건’이 연기를 뿜어내고, 글린다의 버블머신이 수천 개의 비눗방울을 흩뿌리며 하늘을 누빈다. 날아다니는 원숭이와 거대한 시계 톱니바퀴 등 세밀하게 꾸며진 무대 장치는 오즈의 세계를 생생하게 펼쳐낸다.
영화와 비교하며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영화가 1막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화려한 컴퓨터그래픽(CG)을 통해 동화 속 세상을 구현했다면, 뮤지컬은 배우들의 생생한 라이브를 관객들이 함께 호흡하며 공연만의 감동을 전한다.
글린다가 엘파바를 변신시키며 부르는 넘버인 ‘파퓰러(Popular)’는 글린다 캐릭터 특유의 유쾌하고 과장된 연기로 웃음을 자아냈다. 1부 마지막 장면의 엘파바가 ‘디파잉 그래비티(Defying Gravity)’를 부르며 공중으로 솟구치는 장면에선 객석에서 기립박수가 쏟아지기도 했다.
영화가 차별받는 동물들의 이야기 등 주변 인물들의 서사를 보다 세밀하게 다뤘다면, 뮤지컬은 엘파바의 성장과 내면에 초점을 맞춰 간결하고 힘 있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점도 다르다. 서울 공연은 10월 26일까지. 이후 부산과 대구에서 순차적으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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