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행성 기억상실증을 앓는 소녀와 거짓 사랑 고백을 한 소년의 로맨스를 다룬 뮤지컬 ‘오늘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유니버셜라이브 제공사랑하는 이들에게 ‘누적된 시간’이란 깊어가는 마음을 위한 필수조건이지 않을까. 함께 데이트하며 추억을 쌓고, 그 기억을 되새기는 시간. 아무런 관계도 아니었던 두 사람은 점차 특별한 존재가 되어간다. 하지만 그 중 한 사람의 기억이 매일 초기화된다면? 자고 일어나면 모든 기억이 사라진다 해도, 그 사랑은 이어질 수 있을까.
지난달 서울 강남구 코엑스 신한카드 아티움에서 개막한 뮤지컬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는 바로 이 시간과 사랑에 대한 질문으로 극을 이끌어간다. 일본 소설가 이치조 미사키(一条岬) 의 동명 베스트셀러가 원작으로, 순행성 기억상실증을 앓는 여고생 ‘히노 마오리’와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를 도우려 거짓 고백을 한 소년 ‘가미야 도루’가 주인공. 도루 역은 이준·윤소호·김인성이, 마오리 역은 장민제·솔빈이 맡았다.
소설은 영화로도 제작돼 2022년 국내 개봉해 121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최근 10년 동안 한국에서 선보인 일본 실사영화의 최고 성적이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한국제작사 라이브러리컴퍼니와 유니버설라이브가 뮤지컬로 공동제작했다. 황정은 작가와 이상훈 작곡가, 이대웅 연출의 초연작.
도루의 고백을 받아준 마오리는 세 가지 조건을 내건다. ‘학교에서 말 걸지 않기’, ‘연락은 최소한으로 하기’, ‘진심으로 좋아하지 않기’. 그렇게 시작된 가짜 연애는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진짜 사랑으로 변해간다.
순행성 기억상실증을 앓는 소녀와 거짓 사랑 고백을 한 소년의 로맨스를 다룬 뮤지컬 ‘오늘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유니버셜라이브 제공순행성 기억상실증은 로맨스 장르에서 익숙한 설정이다. 그래서 너무 뻔하지만 더 쉽게 공감할 장점도 된다. 풋풋한 도루의 엉뚱하고 귀여운 매력은 웃음을 자아내고, 매일 사진 찍고 일기 쓰며 그를 기억하려 애쓰는 마오리는 마음이 뭉클하다. 기억이 없기에 오히려 새롭게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 소년과 소녀. 공연을 보는 내내, 웃었다 울었다 하며 몸에 변화가 생길까봐 걱정하게 된다.
주변 ‘친구’들의 존재는 극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요소. 도루가 사라진 뒤 마오리를 지키기 위해 기억을 지우려는 ‘와타야 이즈미’는 이야기의 몰입도를 높인다. 도루를 괴롭히다 그의 진심에 감화된 ‘사에구사 겐토’ 역시 매력적이다.
낭만적이고 상큼한 넘버들도 하이틴 로맨스 정서와 잘 어울린다. 1부 마지막 곡 ‘너에게 달려가’는 도루와 마오리뿐 아니라 모든 등장인물이 각자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벅차고 애틋한 감정을 잘 담아냈다. 모던 록과 포크, 발라드, 신스팝까지 다양한 장르가 어우러져 듣는 재미를 더한다. 발광다이오드(LED)를 활용해 구현한 봄날의 벚꽃, 여름날 불꽃놀이, 푸른 수족관 등 무대 세트도 섬세하고 완성도가 높다. 다만 1부(85분)에 비해 러닝타임이 짧은 2부(45분)는 감정선이 섬세하지 않아 아쉽다.
황 작가는 “청소년이 극의 주축이지만, 사랑과 상실을 경험한 모든 이들이 즐길 수 있는 작품”이라고 했다. 정말 이 뮤지컬처럼 결핍에서 시작된 사랑이 더 큰 행복으로 다가올 수 있을까. 꿈은 꾸는 자의 몫일뿐. 다음 달 2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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