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순 시인(70)이 시집 ‘죽음의 자서전’ 독일어 번역본으로 독일 세계 문화의 집(HKW)이 수여하는 국제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아시아 작가로는 첫 수상이다.
HKW는 17일(현지시간) 시상식을 열고 올해 국제문학상 최종 후보 6명 가운데 김 시인을 수상자로 발표했다. 만장일치로 수상자를 선정한 심사위원들은 “김혜순의 ‘죽음의 자서전’에 수록된 시들은 죽음이라는 모국어에서 생성된 시들의 번역본”이라며 “이 시들은 기적이다. 저승의 문턱에서 만들어지는 울림을 그대로 귀 기울여 들을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고 했다.
현재 한국에 있는 김 시인은 화상으로 연결한 자리에서 “번역자 박술과 울리아나 볼프, 심사위원들, HKW, 출판사 피셔의 대표 포겔과 편집자 마들렌, 그리고 낭독 행사를 기획한 시 문학관의 마티아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국제문학상은 그해 독일어로 번역된 뛰어난 현대문학에 수여하는 상으로 2009년 시작됐다. 한강 작가 역시 2017년 ‘채식주의자’ 독일어 번역본으로 이 상의 최종 후보에 이름을 올렸으나 수상으로 이어진 것은 김 시인이 처음이다.
시집을 번역한 박술과 울리아나 볼프 번역가도 함께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상금은 총 3만5000유로(약 5600만 원)이며 작가에게 2만 유로, 번역가에게 1만5000유로가 각각 주어진다.
‘죽음의 자서전’은 김 시인의 12번째 시집으로 국내에서 2016년 출간됐다. 시인이 2015년 지하철역에서 쓰러진 경험에서 영감을 얻었다. 불교의 49재 전통에 뿌리를 두고 메르스와 세월호 사태 등 사회적 죽음들을 떠올리며 49편의 연작시를 엮었다. 올해 2월 독일 출판사 피셔가 대산문화재단의 출판 지원을 받아 번역본을 펴냈다.
최근 한 달에 걸쳐 독일, 오스트리아, 영국에서 문학행사를 마치고 귀국한 김 시인은 4일 서울 연세대에서 열린 ‘2025 글로벌 문학포럼’에서 현지 낭독회에서 겪은 에피소드를 들려주기도 했다. 그는 “해외 독자들로부터 ‘당신의 시에서 주어의 자리가 해체되는 것을 보게 된다. 누가 말하고 있는지 분명치 않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한국어는 주어가 생략된 경우가 많다. 더구나 죽은 자들이 주어를 간직한 채 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대답한다”며 “그런 대답을 하면서 청중과 저는 그들 나라 시의 영토를 확장해간다”고 했다.
김 시인은 197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으로 입선한 뒤 1979년 ‘문학과지성’을 통해 시로 등단했다. 앞서 ‘죽음의 자서전’ 영역본으로 2019년 한국인 최초로 캐나다 그리핀시문학상을 받았다. 2021년 스웨덴 시카다상을 받았으며 2024년에는 시집 ‘날개 환상통’ 영어판으로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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