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제주살이 시인의 사계절 ‘자연일기’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7월 19일 0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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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환하니 서러운 일은 잊어요/문태준 지음/292쪽·1만8000원·마음의숲


“해바라기의 키가 커가고, 대낮의 시간이 길어지고, 목에 두른 수건이 흠뻑 젖어 있으니, 이즈음을 여름의 얼굴이 설핏설핏 보이는 때라고 해야겠다.”(여름편 ‘여름의 얼굴이 설핏 보이는 때’에서)

지난해 등단 30년을 맞은 문태준 시인이 제주 시골집으로 내려갔다. 그가 그곳에서 오래된 밭을 일구고 풀을 뽑으며 자연을 기록한 산문집이다.

시인은 교훈을 강요하지 않는다. 자연을 보며 삶의 이치를 깨우친 듯한 글보다는, 여름날 바닷가에서 뛰노는 아이들에 대해 쓴다. 독자로 하여금 각자의 여름을 떠올리게 만드는 글이 많다. 팔이며 등이며 까맣게 탄 채 바다수영을 즐기는 아이들을 보며 “곰곰이 생각하면 누구나 올해 여름을 각별하게 하는 장면이 떠오를 것”이라고 말한다.

책의 묘미는 중간중간 자연을 관찰하며 지은 시들이다. 대낮에 화초에 물을 뿌리는데 이웃집 사람이 말렸단다. 물방울로 인해 꽃과 잎을 불에 익히는 것처럼 되고 만다는 것. 시인은 그날 저녁 무렵에야 물을 주며 ‘동근(同根)’이라는 시 한 편을 썼다.

‘대지가 가물어 사람도 가물어요/나는 대지의 작은 풀꽃/흥얼거리는 실개천/대지에 먹을 물이 모자라니/나는 암석 같아요’

책은 여름에서 시작해 사계절을 담은 4부로 구성돼 있다. 계절에 맞춰 읽어도 좋고, 시원함을 미리 느끼고 싶으면 가을이나 겨울 챕터를 읽는 것도 나쁘지 않다. 감귤, 돌담 등 제주에 관한 생생한 묘사가 많아 섬 풍경이 그리울 때마다 읽으면 더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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