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 맛보기] 〈6〉 피에르 보나르 ‘봄의 일몰’
춤추듯 일렁이는 검고 굵은 선
풍경속 여인, 열린 느낌 선사
피에르 보나르의 ‘봄의 일몰’(1909년).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모네에서 앤디 워홀까지’전에서 최고 인기작인 클로드 모네의 ‘봄’을 비롯해 인상파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있는 전시실을 빠져나오면 후기 인상주의 작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방이 나온다. 그 방에 피에르 보나르의 ‘봄의 일몰’이 있다. 로댕의 조각을 보러 빠른 발걸음으로 움직이면 자칫 놓칠 수 있는 크기이지만, 무심코 벽면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춤을 추듯 일렁이는 나무의 검고 굵은 선이 단숨에 시선을 끌어당기는 그림이다.
인상파 화가들이 도심 속 자연이나 사람들의 일상을 보이는 대로 그리고자 노력했다면, 그다음 세대인 폴 고갱, 빈센트 반 고흐, 보나르는 눈에 보이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 자신만의 해석을 보여줬다. 이를테면 고갱은 브르타뉴의 들판을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오렌지색으로 칠했고, 고흐는 밤하늘을 파도가 휘몰아치는 바다처럼 표현했다. 이 작가들이 보여준 것은 자신의 마음속에 보이는 풍경이다.
보나르 역시 눈에 보이는 풍경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했는데, 상반되는 색채나 사물의 배치를 활용해서 그림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테크닉이 뛰어났다. ‘봄의 일몰’은 아직 새순이 돋아나기 전인 듯 어두운 색의 나뭇가지들이 그림에 깊은 무게를 더하고 있다. 검은 가지들이 흐드러지면서 화면을 흔들고, 그 아래로 비친 옅은 회색 직선의 그림자가 그림에 중심을 잡아준다.
나뭇가지에 빼앗긴 시선을 차분히 주변으로 돌려보면 오른쪽 구석에 그려진 분홍색 드레스를 입은 여자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처음 볼 땐 사람이 없는 풍경 같았는데, 여자를 발견하면서 관객은 완전히 다른 그림을 만난 느낌을 받는다. 이 여자는 의자에 앉아 있지만, 몸의 절반이 캔버스 밖으로 빠져나와 있다.
보통 여자가 앉아 있는 풍경을 그린다고 하면, 풍경은 물론이고 사람도 온전한 모습으로 그리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보나르는 여자가 앉아 있는 부분이 거의 바닥에 깔린 카펫처럼 납작하고 흐릿하게, 심지어 전신 중 일부만 그림 속에 들어온 상태로 그렸다. 이런 과감한 선택 덕분에 무거운 나뭇가지로 향했던 관객의 시선은 오른쪽으로 자연스럽게 빠져나갈 수 있게 되며, 그림은 답답하지 않고 열려 있는 느낌을 자아낸다.
보나르는 빛이 가득한 실내나 정물, 가족 혹은 친구들과의 일상적이고 소탈한 순간을 자주 그려 ‘앵티미스트(intimiste)’로도 불렸다. 법학을 공부해 잠시 변호사로 일하다가 화가가 됐고, 색채를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해 20세기 초 색채를 가장 잘 쓴 화가 중 한 명으로도 꼽힌다. 회화뿐 아니라 삽화, 무대 디자인, 가구와 직물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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