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공찰’ 첫 외국인 주지 인공 스님
인도 출신… 작년 32세 나이로 파격적 임명
“회암사, 외국인 스님 출가 도량으로 만들 것”
인공 스님은 지난해 5월 주지 직무대행으로 미국 보스턴박물관에 소장돼 있던 부처님 진신사리와 지공 선사, 나옹 선사 사리의 회암사 환지본처(還至本處) 봉안 법회를 주관했다. 그는 “인도 출신인 지공 선사와 각별한 인연이 있는 회암사에 700년이 지나 제가 주지로 오고, 또 지공 선사 사리의 봉안 법회 실무를 맡다니 인연도 그런 인연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양주=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불심(佛心)도 더위도, 한국이 인도보다 더 뜨거운 것 같아요. 하하하.”
지난해 9월 대한불교조계종(총무원장 진우 스님) 경기 양주 회암사 주지에 인도 출신 인공(印空) 스님이 임명됐다. 임명 당시 32세라는 나이도 파격적이었지만, 조계종 역사상 공찰(公刹·종단 소유 사찰) 주지에 외국인이 임명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부탄과의 접경 지역인 인도 타왕 지역 출신인 그는 1998년 6세 때 티베트 불교 최대 종파인 겔룩파로 출가한 뒤, 2010년 18세의 나이로 한국에서 재출가했다. 현재 제14대 달라이 라마인 텐진 갸초가 겔룩파 출신이다. 28일 회암사에서 만난 인공 스님은 “2009년 인도로 유학 온 범하 스님을 만나면서 한국과의 인연이 시작됐다”고 회고했다.
“범하 스님이 견문도 넓힐 겸 한국에서 한번 공부해 보면 어떻겠냐고 권하셨어요. 괜찮겠다 싶어서 5년만 공부하고 돌아가려고 이듬해 바로 한국에 왔지요. 그런데 인연이 닿아서인지, 인도에서 산 것보다 한국에서 더 오래 살게 됐네요.”
그는 “원래 계획은 행자 생활 1년, 통도사 강원(講院·사찰에 설치된 교육기관) 4년을 마치고 돌아가는 것이었다”며 “좀 더 공부하고 싶어 동국대 불교학과에 입학했는데, 숙소이던 서울 은평구 수국사에서 주지 호산 스님을 만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그를 좋게 본 호산 스님이 2023년 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경기 양주 봉선사 주지에 임명되면서 그를 봉선사 말사인 회암사 부주지로 데려간 것. 그리고 1년여간의 주지 직무대행을 거쳐 지난해 9월 정식으로 주지 소임을 맡게 됐다.
회암사는 고려 말 인도 승려 지공 선사(?∼1363)가 터를 지목하며 창건된 사찰이다. 지공 선사는 고려 충숙왕 13년(1326년)부터 2년여간 고려에 머물며 불교를 전파했다. 그의 제자인 나옹 선사(1320∼1376)가 도량을 열었고, 나옹의 제자 무학 대사(1327∼1405)가 중창했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머물렀고 정종, 세종, 세조 등 역대 왕과 왕후의 후원을 받았던 유서 깊은 사찰이다.
인공 스님은 외국인으로 주지 소임을 맡게 된 것에 대해 “인도 출신인 지공 선사와의 인연이 있던 곳인 만큼, 나이와 국적을 넘어 좀 더 젊고 개방적인 불교를 만들어 달라는 바람이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신자는 물론이고 출가자까지 급감하는 시대에 불교가 과감하게 변화하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본다는 것. 이런 기대 때문인지 회암사에 상주하는 승려 8명 중 6명이 인도, 스리랑카 등 외국 출신이고 그중 인공 스님을 제외한 나머지 5명은 모두 20대다.
인공 스님은 올해 종교인 특별귀화를 통해 한국인이 됐다. 인도는 이중 국적을 허용하지 않기에 인도 국적은 포기했다고 한다. 그는 “지금까지 모든 것이 연(緣)으로 이어져 여기까지 왔다면, 다음 연은 외국인 출신 주지로서 무탈하게 소임을 마치는 것으로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 불교가 외국인 출신 스님에게 문을 여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는 것이 그의 포부다.
인공 스님은 “외국인 출신 주지다 보니 아무래도 외국인 스님들이 절을 많이 찾는다”며 “회암사를 외국인 스님의 출가 도량으로 키워낸다면 이것이 곧 한국 불교를 세계화하는 데 이바지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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