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게 그어 내린 푸른 선들 사이로 빨간 선의 남성이 떠오른다. 화가인 그가 분주하게 움직인 팔의 잔상이 그림 속에 남아 있고, 얼굴에는 눈 하나가 더 그려져 있다. 눈으로 보는 건 물론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도 그린다는 듯, 화가의 얼굴 옆엔 거꾸로 매달린 얼굴 하나가 더 있다. 서울 종로구 피비갤러리에서 7일 개막한 ‘서용선: 도시의 사람들’에서 볼 수 있는 서용선 작가의 대형 자화상이다.
이 전시는 서 작가가 최근 2년간 미국 뉴욕을 방문해 보고 그린 근작을 모았다. 가운데 있는 폭 2m가 넘는 대형 자화상이 전시장 전체를 지배하는 가운데, 뉴욕의 지하철과 거리에서 본 풍경들이 펼쳐진다. 작가는 격자무늬로 가지런하게 구획된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몸’에 주목한다.
그림 속에서 직선으로 그려진 지하철 의자나 손잡이, 보도블록은 납작하고 차갑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 안을 오고 가는 사람들은 표정은 없어도 따뜻한 색이나 부드러운 붓 터치로 체온이 전해진다. 빌딩 숲이 우거진 도시에서도 안으로 들어가 골목길에 들어서면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것처럼…. 이번 전시에서는 브루클린 지하철에서 본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지하철 대화’ ‘NY 지하철’과 그 풍경을 바라본 작가의 모습을 담은 자화상을 감상할 수 있다.
서 작가는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주로 개발과 변화의 중심지였던 서울의 모습과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왔다. 이후 1992년 처음 뉴욕을 방문한 뒤로 뉴욕 도시 풍경 연작을 그리고 있다. 이 밖에 단종에 얽힌 이야기를 비롯해 한국사를 주제로 한 연작도 작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다음 달 1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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