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뛰어든 윤심덕을 누군가 구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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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초 소프라노의 삶 재해석
뮤지컬 ‘관부연락선’ 무대 올라
서로 공감해 가는 두 여성 그려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닌 두 여성의 우정과 진심을 그려낸 뮤지컬 ‘관부연락선’. 홍컴퍼니 제공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닌 두 여성의 우정과 진심을 그려낸 뮤지컬 ‘관부연락선’. 홍컴퍼니 제공
1926년 8월 4일 관부연락선(시모노세키발 부산행) 도쿠주마루(德壽丸)에서 조선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이 극작가인 김우진과 함께 실종됐다. 그들의 실종이 사고인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 사건은 “연인이던 두 사람이 이룰 수 없는 사랑 끝에 바다에 몸을 던졌다”고 알려지며 비극적 러브스토리로 조명돼 왔다. 그런데 만약, 윤심덕이 죽지 않고 살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이런 상상에서 출발한 창작 뮤지컬 ‘관부연락선’이 4일 서울 종로구 링크아트센터드림에서 개막했다.

윤심덕의 마지막 밤을 새롭게 해석한 이 작품에선 그가 몸을 던지는 모습을 밀항 중이던 여성 홍석주가 우연히 목격한다. 석주는 바다에 뛰어들어 심덕을 구한다.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감추고 싶은 심덕은 석주가 숨어 있던 화물칸에 함께 머물며 서로의 사연을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러브스토리가 두 여성의 인생 이야기로 바뀐 셈이다.

뮤지컬에서 심덕과 석주는 서로 전혀 닮지 않았다. 극단 ‘토월회’ 배우이자 조선 최고의 모던걸로 불리는 심덕은 화려한 외모에 유쾌하고 발랄한 성격이 돋보인다. 반면 남편의 독립운동을 도우려 밀항한 석주는 차분하고 현실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두 사람은 화물칸이란 제한된 공간에서 우연한 동행을 이어가며 서로의 삶과 선택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이 작품의 흐름을 끌어 나가는 키워드는 ‘거짓말’이다. 처음엔 서로 경계하던 두 여성은 자신을 감추기 위해 쓰고 있던 가면을 하나씩 내려놓는다. 뮤지컬은 티격태격하는 대사와 상황극으로 웃음을 자아내다가도, 진중한 넘버가 가슴 깊숙이 파고든다. 금발 마녀 글린다와 초록 마녀 엘파바의 우정을 그린 영화 ‘위키드’의 바다 버전 같은 느낌도 든다.

좁은 공간에 표현된 화물칸과 갑판이 무대의 전부지만, 인물의 내면에 밀착하는 극의 진행은 우리 모두가 가질 법한 불안과 상처를 섬세하게 표현한다. 특히 아픔을 지닌 이들이 우정을 쌓으며 죽음과 맞닿은 밤을 생으로 가득 찬 아침으로 바꿔놓는 장면은 묵직한 울림을 준다. ‘사의 찬미’, ‘산타루치아’ 등 귀에 익은 음악은 익숙하지만 새롭게 다가온다.

이 작품은 뮤지컬 ‘미아 파밀리아’, ‘다윈 영의 악의 기원’ 등으로 탄탄한 서사를 보여줬던 이희준 작가, 서정성과 에너지를 넘나드는 음악 세계를 선보여 온 김예림 작곡가 등이 제작에 참여했다. 심덕 역은 여성 서사가 돋보이는 극에서 자주 활약해 온 배우 전해주와 통통 튀는 매력의 선유하가 맡았다. 석주로는 ‘홍련’ 등을 통해 폭넓은 연기를 보여준 배우 이지연과 신인답지 않은 묵직함이 돋보이는 최수현이 출연한다. 10월 12일까지.

#윤심덕#관부연락선#뮤지컬#조선#소프라노#러브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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