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학자, 10년 집필…공동 역사서 ‘평화를 여는 역사’ 발간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8월 15일 13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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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여는 역사
한중일3국공동역사편찬위원회 지음
464쪽·2만6000원
휴머니스트

윤봉길 의사
윤봉길 의사
죽을 때까지 자국의 침략 전쟁을 거세게 비판한 일본의 시인 쓰루 아키라(1909~1938). 우리나라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나, 1937년 일본이 중국에 대해 전면전을 개시하자 이를 비판하고 반전을 호소하는 시를 잇달아 발표했다. 결국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일제에 검거돼 이듬해 세상을 떴다. 그보다 앞선 1932년, 윤봉길 의사가 홍커우공원 의거를 거행하자 중국 국민정부는 김구 등 임지정부 지도자들을 비밀리에 보호하고 일상을 지원하면서 서로 항일운동을 도왔다.
평화를 여는 역사
평화를 여는 역사
‘평화를 여는 역사’는 세 나라의 역사학자와 교사, 시민단체가 ‘동아시아 공동의 역사 인식’을 공유하고자 함께 만든 3번째 역사 교재다. 동아시아가 서구의 압력에 문호를 열었던 19세기 개항기에서 오늘날에 이르는 역사를 아우른다. 저자 39명과 번역가 24명 등이 2015년부터 10년간 힘을 합쳐 집필했다. 서울대와 도쿄대, 중국사회과학원,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등 소속 저자들이 참여했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역사서지만 쉽고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3부 9장, 36개 질문으로 된 구성은 각 장이 시작될 때마다 풍부한 배경 설명과 연표를 곁들여 이해가 쉽다. 청소년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쓰였지만, 평소 생각지 못했던 질문들은 성인 독자의 허를 찌른다. 예를 들어, ‘외교 담판은 무슨 언어로 진행됐을까요?’ ‘총력전 체제에서 장애인은 어떤 존재였을까요?’ 등이다.

예컨대 1882년 조선이 서구 열강과 맺은 최초의 조약인 ‘조미수호통상조약’(朝美修好通商條約) 체결 현장에선 어떤 언어가 오갔을까. 정답은 영어도, 우리말도 아닌 중국어다. 당시 조선에 영어를 구사하는 역관이 없었고, 직접 교섭이 아닌 청(淸)의 중개로 교섭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책은 “전권대표 신헌의 말을 조선 역관이 중국어로 옮기면 중국인 역관이 다시 영어로 통역해서 미국 전권대사에게 전하는 방식으로 회담이 진행됐다”고 부연했다.

동일 사건에 대한 한·중·일 각국의 상황과 입장을 균형감 있게 정리한 점도 돋보인다. 우리나라에서 매년 8월 15일은 암흑 같은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난 ‘광복절’이다. 북한에서는 ‘조국해방기념일’이라 불린다. 반면 패전국 일본은 ‘종전 기념일’이라고 부른다. “패전이나 항복 같은 ‘자극적인’ 표현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대만의 ‘광복절’도 8월 15일일까. 일제 대만총독부가 중국 국민정부와 항복문서에 조인한 10월 25일을 광복절로 지정했다.
세이로간(정로환)
세이로간(정로환)
책장을 덮을 땐 갈등과 협력이 번갈아 이어지는 동아시아 3국에 대한 시야가 넓어진 것을 느낄 수 있다. “누군가를 적대하는 것은 상대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대화와 토론, 미래를 향한 연대야말로 새로운 역사의 가능성을 열어 줄 것”이라는 저자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부제는 ‘한·중·일 3국이 함께 생각하는 동아시아의 미래’.

#일본 시인#쓰루 아키라#항일운동#동아시아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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