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갈증에 ‘말차 붐’… 고려시대에도 유행했다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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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건강 챙기는 젊은층에 어필
고려 개경 다점 성행, 서민도 즐겨
조선시대 명맥 끊겨 ‘티백형’ 보급

투명한 가방에 말차를 붓는 ‘말차 백(bag)’ 콘텐츠의 한 장면.
인스타그램 캡처
투명한 가방에 말차를 붓는 ‘말차 백(bag)’ 콘텐츠의 한 장면. 인스타그램 캡처
“클래식 시럽 빼고 프라푸치노 시럽 라이트로 넣어 주세요. 우유는 두유로 바꾸고, 말차 파우더는 4번 추가해 주세요.”

최근 MZ세대를 중심으로 유행하는 말차 주문법이다. 말차가 세계적인 인기를 끄는 가운데, 한국에서도 말차를 찾는 이들이 크게 늘고 있다.

최근 소셜미디어에선 바닥에 쏟은 말차를 자신의 신발, 옷 등과 함께 찍어서 올리는 ‘말차 스필(Matcha Spill)’ 챌린지가 인기다. 감성적인 이미지를 추구하는 젊은 남성이 말차를 즐겨마시는 데서 착안한 ‘퍼포머티브 메일(Performative Male)’ 밈도 확산하고 있다. 말차의 초록빛과 부드러운 거품 등의 이미지가 ‘인증 샷’이 중요한 MZ세대들에게 어필한 것이다. 가수 두아 리파, 배우 젠데이아 등이 말차를 마시는 모습을 소셜미디어에 올린 것도 유행 확산에 한몫했다.

28일 스타벅스 코리아에 따르면 올해 1∼6월 ‘제주 말차 라떼’와 ‘제주 말차 크림 프라푸치노’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 이상 늘어났다. 스타벅스 관계자는 “찻잎을 우리는 녹차와 달리 가루로 만들어 통째로 마시는 말차가 건강에 더 이롭다는 인식이 있다”며 “즐겁게 건강을 챙기려는 ‘헬시플레저’ 트렌드 속에 연예인을 따라 하는 모방 소비로 젊은층에서 인기”라고 분석했다.

말차는 패션에도 영향을 미쳤다. 최근 말차 색깔 옷과 네일아트 등을 즐기는 ‘말차코어(말차+Normcore)’가 유행이다. LF몰에 따르면 지난달부터 이달 20일까지 ‘그린·카키·민트’를 키워드로 한 검색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배 급증했다. LF몰 측은 “전통적으로 가을, 겨울철에 선호하는 색상이라 이례적”이라며 “최근 말차 유행의 영향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렇다면 말차는 해외에서 들어온 갑작스러운 문화일까. 전문가들은 한반도에서 말차를 마시기 시작한 건 11∼12세기 고려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본다. 송나라에서 고려로 전래된 말차는 사찰과 상류층을 중심으로 음용됐다고 한다. 불교 승려에게 말차는 맑은 정신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자 수행 방식이었다. 고연미 차학인문연구소장은 “개경에서는 다점(茶店)이 성행하면서 문인뿐 아니라 서민도 말차를 즐긴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고려 중기의 문인인 이인로(1152∼1220), 이규보(1169∼1241) 등이 남긴 문집에도 말차에 관한 기록이 전해진다. 이인로는 시 ‘승원다마(僧院茶磨)’에서 찻잎을 갈아내는 모습을 “옥가루가 날린다”고 했다. 이는 당대 유행한 차 마시는 방식과 관련된다. 찻잎을 다마(茶磨·차맷돌)로 곱게 갈아 끓인 뒤 휘저어 마시는 점다법(點茶法)으로, 오늘날 말차를 만들어 먹는 법과 유사하다.

하지만 조선시대엔 차(茶) 문화가 대부분 없어지면서 말차도 명맥이 거의 끊겼다. 현대에 들어선 산업화를 거치면서 티백형 녹차가 보급됐다. 정진원 국민대 도자공예과 교수는 “오늘날 웰빙을 추구하고 ‘녹색 갈증’을 느끼는 젊은층 문화와 부합하면서 말차가 재조명되고 있다”고 했다.

#말차#녹차#말차 스필 챌린지#이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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