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바흐의 ‘b단조 미사’를 200번 정도 지휘했지만 이 작품은 단순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존재론적 여정’에 가깝습니다. 바흐 생애 전반의 경험, 신학적 깊이, 대위법적 완성도, 그리고 제 이해를 뛰어넘는 영적인 힘이 응축돼 있죠.”
‘고(古)음악 거장’ 지휘자 필리프 헤레베허(78)가 18일 바로크 앙상블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와 내한해 18일 서울 예술의전당, 19일 대전예술의전당, 20일 아트센터 인천에서 연달아 연주회를 연다. 이번 무대에서 그는 바흐가 생애 막바지에 자신의 성악 작품을 집대성해 선보인 바흐의 ‘b단조 미사’를 선보인다.
헤레베허는 19세기 중후반 악기와 연주법의 혁신이 일어나기 이전의 음악을 그 곡이 작곡되던 시대의 악기와 연주법을 되살려 연주하는 ‘역사주의’ 혹은 ‘시대주의’ 음악으로 정평이 난 지휘자다. 내한 공연을 앞두고 본보와 서면으로 인터뷰한 그는 “내게 ‘순도’란 음악이 스스로 말할 수 있게 불필요한 것을 걷어낸 투명함과 자유로움을 뜻한다”며 “시대악기로 연주하는 것은 향수나 순수주의의 문제가 아니라 바흐가 상상했던 소리의 세계를 찾아가는 과정이며 이를 통해 바흐의 목소리가 ‘더 진실되게’ 전달된다”고 말했다.
헤레베허는 “‘b단조 미사’를 수 없이 연주했음에도 매번 악보에서 새로운 것을 경험한다. 전에 듣지 못했던 것을 듣고 보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이 있다”며 “특히 제2부 ‘글로리아’에서 오보에와 알토가 긴밀하게 주고 받는 부분을 가장 좋아한다. 마치 두 사람의 대화를 듣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헤레베허는 의대생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벨기에인인 그는 의사였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정신의학을 전공했지만 음악을 좋아해 겐트 예수회 학교에서 음악 공부를 병행하며 오르간, 하프시코드 등을 연주했다. 그러다 1970년에 역사주의 합창단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를 창단하며 본격적으로 지휘 활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솔직히 말하면 여자 친구들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며 “솔리스트로서도 손색없는 각 연주자의 역량과, 각 레퍼토리에 맞춰 최적의 합창단을 구성하는 역량이 이 앙상블의 큰 강점”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창단한 지 50년 넘게 이들과 함께 해오고 있다.
“콜레기움 보칼레 켄트는 저한테는 음악적 기반이자 집이예요. 정신과 의사라는 길을 내려놓고 전업 음악가로 나아갈 힘을 줬거든요. 이들은 동료라기보단 친구 같은 존재이고 함께 음악을 만들어요.저를 지휘자로 신뢰해주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헤레베허는 한국 관객에 대한 기대감도 드러냈다. 그는 이전 내한 공연 때도 한국 관객의 열린 태도와 역동적 반응에 감탄했다고 밝혔던 바 있다. 그는 “특히 인상적인 점은 한국 관객의 다양성”이라고 했다.
“모든 연령대의 관객들이 마치 록스타를 대하듯이 열정적으로 반응해주는데 유럽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모습이거든요. 이번에는 관객의 반응이 또 어떻게 다를지 무척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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