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년 전 장인이 한 장씩 만든 고서의 감촉, 예술이에요”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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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 필사본 선보인 하인드먼
세계 3명뿐인 필사본 전문 연구 딜러
“중세 왕족-귀족이 주문 제작해
가죽 피지로 공들여 만든 예술품”

중세 유럽 책을 다루는 프랑스 갤러리 ‘레장뤼미뉘르’의 샌드라 하인드먼 대표가 기도서 ‘시간의 서’를 펼쳐 보이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책장에서 조용히 꺼내 보는 필사본은 아주 내밀한 예술품이에요. 수백 년 전 장인이 만든 책을 만져보고 느낄 수 있다는 것, 필사본만의 매력입니다.”

프리즈 아트페어에서 고미술품을 다루는 ‘프리즈 마스터스’ 섹션에 꾸준히 중세 유럽 책을 가져와 눈길을 끄는 갤러리가 있다. 30년 전 프랑스 파리에 설립돼 미국 뉴욕에 지점을 둔 ‘레장뤼미뉘르’다. 이 갤러리를 이끄는 샌드라 하인드먼 대표(81)를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북촌의 한옥에서 만났다.

하인드먼 대표는 50대에 갤러리를 열기 전까진 대학에서 중세 미술사와 필사본을 가르치는 교수였다. 그는 “중세 필사본 분야는 매우 특수해 고미술 상인이 도움을 요청할 때가 많았다”며 “필사본을 감정하고, 고객 연결을 도와주며 갤러리 운영의 꿈을 갖게 됐다”고 했다.

그가 올해 프리즈 마스터스에 가져온 건 14세기 필사본 ‘장미 이야기(Le Roman de la Rose)’와 중세 프랑스에서 유행했던 기도서 ‘시간의 서’ 등이다. 그는 “장미 이야기는 중세의 사랑과 모험을 담은 것으로 1350년경 기욤 드 로리스와 장 드 묑이 제작했다”며 “총 19권 중 18권은 공공기관이 소장하고 있고, 외부로 나온 유일한 한 권”이라고 설명했다. 청금석과 공작석, 송아지 가죽을 다듬은 피지로 만든 이 책은 중세 왕족이나 귀족이 주문 제작했다.

하인드먼 대표는 중세 필사본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3명의 딜러 가운데 한 명이다. 미술품도 수집한다. 피카소의 연인이었던 예술가 도라 마르의 작품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갖고 있다고 한다. 하인드먼 대표는 “여성으로 일하며 자연스레 중세는 물론이고 모든 시대 여성 미술가에게 관심을 갖게 됐다”며 “프리즈 서울에 참가하며 한국 작가 노은님(1946∼2022)의 작품도 소장하게 됐다”고 했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미술사학과 명예교수이기도 한 하인드먼 대표는 2023년 서울대에서 ‘중세 필사본의 과거 현재 미래’를 주제로 특별 강연을 하는 등 세계에서 이 분야를 알리려 노력한다. 그는 “중세 필사본은 틈새시장이지만 미국, 유럽은 물론이고 중동의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와 일본까지 세계 곳곳에 열정적인 컬렉터들이 있다”며 “파리엔 ‘시간의 서’ 수십 권을 수집하고 매일 밤 한 권씩 꺼내 감상한다는 소장가도 있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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