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중국 지린성 룽터우산에서 발견된 발해 효의황후 묘지(왼쪽 사진)에선 중국과 구별된다는 발해의 자기 인식이 담긴 ‘東國(동국)’(가운데 사진 점선 안) 표현이 확인된다. ‘발해국 순목황후 묘지명’(오른쪽 사진)도 발해의 황제국 체제를 보여준다. 사진 출처 ‘발해 용두산 왕실고분 발굴 보고서’
2004년 중국 지린(吉林)성 허룽(和龍)시 룽터우산(龍頭山·용두산)에 있는 발해 왕실 고분군에서 발견된 효의황후와 순목황후 묘지(墓誌)에 ‘동국(東國)’ ‘발해국(渤海國)’ 등의 표현이 담긴 것으로 확인됐다. 발해인들이 중국과 자신을 뚜렷이 구분하는 인식을 지녔음을 보여주는 한편 ‘발해는 당나라의 지방 정권에 불과하다’는 중국 동북공정의 주장을 반박하는 증거로 평가된다.
권은주 동북아역사재단 선임연구위원은 5일 재단이 개최한 ‘발해 용두산 왕실고분 발굴 보고서의 주요 내용’ 보고회에서 “동국은 ‘해동(海東)’ ‘아방(我邦)’ 등과 함께 우리 역사에서 중국과는 지역적으로 구분된다는 인식의 표현으로 사용됐다”며 “발해도 이 표현을 썼다는 게 효의황후 묘지에서 처음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효의황후는 발해 제3대 왕인 문왕의 비로, 묘지엔 “덕은 동국에서 높고, 용모는 서시(西施)와 견준다”는 구절이 담겼다.
중국 측은 중국 정사가 고구려와 백제, 신라 등을 ‘동이열전(東夷列傳)’ 등에 편찬한 데 반해 발해는 ‘북적(北狄)’으로 분류했다며 발해사를 말갈의 역사로 본다. 하지만 이는 사서를 편찬한 중원의 인식일 뿐이라는 점이 이번 묘지를 통해 드러났다고 권 연구위원은 분석했다.
예컨대, 발해 제9대 간왕의 황후 순목황후 묘지는 아예 제목이 ‘발해국 순목황후 묘지명’이다. 권 연구위원은 “발해가 스스로를 중국 천하질서의 일원으로 인식했다면 ‘유당(有唐·당나라의) 발해’ ‘대당(大唐) 발해’ 등으로 썼어야 한다”며 “중국 측의 이른바 ‘통일적 다민족국가론’과는 배치되는 자료”라고 강조했다.
발해가 황제국 체제를 지녔음을 뒷받침하는 내용은 더 있다. ‘황후’라고 불렀을 뿐 아니라 순목황후의 죽음은 황제와 황후에만 쓰는 ‘붕(崩)’으로 표현됐다. 효의황후 묘지엔 “성조(聖朝)에 충성을 다했다”는 구절이 있다. ‘성조’는 통상 황제국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묘지를 통해 효의황후가 울(欎)씨, 순목황후가 태(泰)씨라는 점도 밝혀졌다. 발굴 보고서가 발간되자 효의황후가 중원계라는 해석도 나왔으나, 권 연구위원은 “희성(稀姓)인 울 씨는 북방계가 주로 사용하던 성 씨”라며 “효의황후는 선비나 말갈계일 것”이라고 했다.
중국은 1997∼1998년, 2000∼2005년, 2008년 룽터우산 일대에서 발굴조사를 벌였지만 보고서를 내놓지 않다가 최근에야 뒤늦게 간행했다. 이에 국내 학계 일각에선 ‘중국 당국의 기조와 맞지 않는 발굴 내용을 감추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보고서는 “해석은 우리와 다르지만 발굴 내용은 비교적 충실히 소개한 것으로 보인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김은옥 한국전통문화대 강사는 이날 보고회에서 “발굴 보고서는 발해 문화의 독창성과 함께 ‘당(唐) 문화의 영향’을 강조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석축묘, 횡혈식 석실묘, 천장의 구조 등 묘제(墓制)와 연화문 와당, 토기, 관식(冠飾) 등 유물은 고구려 문화와의 유사성이 확인돼 추후 관련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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