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가까이 K팝을 소재로 소설을 써 왔지만 이희주 작가는 아직 할 얘기가 너무 많다고 했다. “30대가 된 지금은 (아이돌을) 양육하는 것 같은 마음이 불쑥불쑥 치밀어요. 40, 50대가 돼서 대하는 마음은 또 다르겠죠.”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강타 사랑해요’를 쓰면서 한글을 뗐어요. 엄정화의 ‘페스티벌’을 보며 숟가락을 떴습니다. 제가 K팝에 대해 (소설을) 쓰는 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아직 K팝이라는 단어조차 낯설던 시절부터 K팝에 푹 빠졌던 소설가 이희주(33). 그는 지금껏 ‘한 우물만 파온’ 작가다. 2016년 데뷔작 ‘환상통’ 때부터 아이돌 팬의 심리를 깊이 파고들더니, 급기야 2021년 두 번째 장편소설 ‘성소년’은 아이돌 멤버를 납치하는 내용이었다.
성과는 놀라웠다. ‘성소년’은 지난해 영미권 대형 출판사와 억대 선인세 계약을 맺으며 해외 진출에 성공했다. 그리고 올해 단편 ‘최애의 아이’와 ‘사과와 링고’로 젊은작가상과 이효석문학상 대상을 연이어 받았다. 5일 출간한 첫 소설집 ‘크리미(널) 러브’(문학동네) 역시 K팝이 소재. ‘덕질’로 일종의 ‘성덕’이 된 셈이다.
16일 서울 동작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작가의 신간엔 불온한 금단의 욕망을 담은 여덟 편이 실렸다. 결코 아름답다고만 할 수 없는 사랑의 본질에 대해 질문한다. 수록작 ‘최애의 아이’에선 주인공이 최애 아이돌의 정자를 사서 임신까지 한다. “앞으로 25년은 낡고 닳고 시들어가는 대신 성장하며 아름답게 개화할 … 굿즈”라는 문장은 당황스러울 정도.
이 작가가 이렇듯 집요하게 K팝을 파고드는 건 그의 삶이 창작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작가 역시 “제가 소재를 선택한 게 아니라, 제 삶 속에 아이돌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제로 작가는 ‘케이팝 하는 여자들’이란 모임도 하고 있다. 특정 아이돌을 지지하기보단, K팝 팬들이 함께 모여 토론한다. 최근 작가는 여기서 ‘자본주의 바깥에서 사랑하기’를 주제로 발표를 하기도 했다.
“팬덤 문화는 소비 문화와 떼려야 뗄 수 없어요. 지금은 그게 더 가속화되는 상황이죠. 앨범을 통해 음악을 듣지 않는 시대인데도, 최애를 1등 만들려고 수십 장씩 사요. 많은 팬들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지구야 미안해’라고 한답니다. 이런 방식에서 어떻게 벗어나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을까. 그 고민을 발표했어요.”
오랜 K팝 팬으로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어떻게 봤을지도 궁금했다. 이 작가는 “첫 K팝 영화로서 팬들이 원하는 이상적인 아이돌 모습을 잘 담아냈다”면서도 “팬덤 내부의 복잡성과 정동은 또 다른 방식의 작품으로 풀어내야 한다”고 했다.
“정반합(正反合)이 있으면 이제 막 정(正)이 나온 셈이죠. 다음엔 반(反)도 한번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K팝의 인기에 힘입어 그의 소설에 대한 해외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미국 하퍼콜린스와 영국 팬 맥밀런과의 계약도 현지에서 먼저 “K팝 소재의 소설을 소개해 달라”고 요청하며 이뤄졌다고 한다. ‘성소년’은 브라질과 이탈리아, 프랑스에서도 출간을 확정했다.
이 작가는 “그간 문단에서 잘 다루지 않았던 소재라 처음엔 독자들이 어떻게 읽어야 할지 낯설어했던 시기가 있었다”며 “어쨌든 끈기 있게 하니까 ‘작가의 스타일’이라고 인정해 주시는 것 같다”고 감사를 표했다. 자신처럼 “한국 문단에 돌연변이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앞으로 K팝을 소재로 쓰는 작가들이 늘면 돌연변이가 주류가 되는 건 아니냐’고 묻자, 이 작가는 빙긋 웃었다.
“K팝 소설은 제가 시초고, 제일 잘 쓴다는 자신감이 있어요. 원조 마복림 할머니 떡볶이의 국물 맛을 잘 지켜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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