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8월 13일 ‘이산가족의 날’
1964년 한일회담 ‘이산가족’ 용어
1971년 한필성-한필화 남매 통화
1985년에야 남북 고향 방문 성사
● 법정 기념일인 음력 8월 13일 ‘이산가족의 날’
혹시 여러분 주변에 이산가족이나 북한이 고향인 실향민이 계신가요? 달력을 보니 2025년 10월 4일, 음력 8월 13일은 이산가족의 날입니다. 명절에 고향에 갈 수 없는 이산가족들의 의견을 받아 정부가 재작년부터 음력 8월 13일을 법정 기념일로 정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문제로 정든 고향과 가족을 떠나 새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히 우리 사회는 일제 식민지 시대와 한국 전쟁, 근대화 과정에서 많은 헤어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흔적들이 각 가정마다 하나 정도는 남아 있지 않나 싶습니다. ● 이산가족의 여러 형태
이번 주 백년사진에서는 ‘이산가족’이라는 키워드를 선정해 보았습니다.
동아일보 데이터베이스에서 이산가족을 검색해보니, 처음 그 용어가 기사에 언급된 것은 일본에 있는 한국인의 지위에 관한 한국과 일본 정부 간의 협상에서였습니다. 1964년 한일회담에서 한국 측은 재일 한국인의 법적 지위에 관해 주장하며 소위 ‘이산가족’의 영주권 보장 문제를 새롭게 제기했습니다. 당시 이 기사의 필자는 나중에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의 역할을 하게 된 권오기 기자였습니다. 여기서 ‘이산가족(離散家族)’이라는 용어가 신문에 처음 등장했습니다.
이산가족의 이미지는 지난 100년 간 신문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1920년대 신문 곳곳에는, 미국 하와이 사탕수수밭으로 노동이민을 떠났던 동포들이 한국을 방문해 전국을 돌며 교육과 체육 등 선진문화를 알린 후 다시 서울역과 부산항을 통해 미국으로 가는 장면이 게재되어 있었습니다.
1970년대 월남 파병과 2000년대 평화유지군 파병 뉴스에도 어김없이 가족들의 이별과 상봉 장면이 첨부되어 있습니다. 우리사회는 많은 이별의 역사를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족이 헤어지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정부가 지정한 ‘이산가족의 날’에서 말하는 가족은 남북분단과 한국전쟁으로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가족을 말합니다.
●1971년. 전화선 너머의 울음 ― 한필성‧한필화 남매
동아일보 DB에서 ‘남북 이산가족’ 이미지를 찾아 보았습니다. 사진 속에 남아 있는 현대사의 아픔은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1971년 2월 동아일보는 서울의 오빠 한필성 씨와 북한에서 도쿄로 와 있던 동생 한필화 씨의 전화 상봉 현장을 실었습니다. 국제 전화를 위해 수화기를 붙잡고 ‘피맺힌 대화’를 이어가는 남매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었습니다. 분단으로 끊어진 20여 년의 세월이 짧은 통화에서 터져나왔습니다.
한필성.한필화남매의 단장의 통화 - 일본 삿뽀로에서 열린 동계프레올림픽에 참가한 북의 누이 한필화를 찾아 오빠 한필성이 현해탄을 건너 달려갔으나 북의 방해로 끝내 이 두 혈육은 만날수가 없었다. 전화를 통해 가족의 안부를 물으며 흐느끼는 오누이의 몸부림은 민족 모두의 몸부림이었다.(1971년 2월17일)/ 동아일보 DB
● 카메라에 담긴 첫 남북 판문점 접촉
1971년 8월 판문점에서는 남북적십자회담 파견원들의 첫 접촉이 이뤄졌습니다. 송호창 당시 동아일보 사진기자의 사진은 양측 경비병이 경계하는 가운데 남북 대표단이 회담장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새 역사가 숨쉰 8월 20일”이라는 기사 제목처럼, 기자와 카메라들은 군사적 긴장 속에서도 터진 새로운 물꼬를 기록하려 애썼습니다. 당시 사진은 긴장된 공기와 취재진의 열망을 동시에 드러내며, 이산가족 상봉의 제도적 출발점을 보여줍니다.
[남북적십자 파견원 제5차 접촉]
남북 예비회담 대표자 명단 전달 광경을 밖에서 취재하는 기자들. 동아일보 DB
● 1983년 KBS 광장,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의 눈물
1983년 여름, KBS는 특별 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를 시작했습니다. 원래 하루치 방송으로 계획했다 너무 많은 이산가족들이 방송국으로 연락을 해오면서 4개월짜리 특별 방송으로 편성되었습니다. 무명가수 설운도의 “잃어버린 30년“이 그 시절 하루 종일 방송에서 나왔습니다. 동아일보 기자가 촬영한 사진에는 20년 만에 만난 남매가 뜨겁게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이 남아 있습니다. 흑백사진에서 눈물이 이렇게 보인다는 것은 눈물의 크기 때문일 것입니다.
손이라도 만져보자 `연구야! 아아, 마지막으로 손이라도…` 짧은 만남을 뒤로 한채 다시 못볼 땅으로 돌아가는 동생의 체온이 아쉬워 차창을 사이에 두고 손바닥을 마주댄 南의 형 洪연옥씨. <홍석희 기자> 1985년 9월. 동아일보 DB1985년 9월, 남북 고향방문단 교환이 성사되었습니다. 사진 속에서는 짧은 만남이후 남북 형제가 차창 너머로 한명은 웃으며 손을 흔들고, 한명은 차 밖에서는 오열하는 모습이 대비되었습니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 사진에는항상 만남의 기쁨과 곧 닥칠 이별의 아픔이 동시에 담겨 있습니다.
2000년 8월 서울 삼원가든 만찬장에서는 88세 어머니가 북에서 내려온 아들에게 직접 고기쌈을 먹여주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습니다.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 2회차 마지막 날인 26일 금강산 호텔에서 열린 작별 상봉에서 남측 양순옥(86·왼쪽)씨가 북측 동생 량차옥(82)씨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아래 가족사진에서 왼쪽 갓난아기는 북측 량차옥씨, 오른쪽 어린이는 남측 언니 양순옥씨./20180826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또 다른 사진에는 77세 박춘자 씨와 북측 언니 박봉렬 씨가 작별을 준비하는 모습이 담겼습니다. 만남의 시간은 2시간에서 3시간으로 연장되었지만, 여전히 부족한 시간이었습니다. 2018년 8월 이후 정부 차원의 남북이산가족상봉 행사는 북한의 거부로 중단되어 있습니다.
● 디지털로 준비된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
그동안 우리 정부는 이산가족의 만남이 온라인으로 가능하도록 준비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을 만들어 상봉 신청과 취소, 영상편지, 유전자 정보 등록까지 이뤄지는 시스템을 갖췄습니다. 이곳은 단순한 행정 창구를 넘어 기억의 디지털 박물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손편지, 사진, 기증 자료, 연표는 한 개인의 아픔을 넘어 민족 전체의 상처를 보존하고 있습니다.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북한의 전향적 태도 변화만 있다면 이산가족의 아픔을 어느 정도 해결할 만반의 준비가 된 셈입니다. 여지껏 북한은 우리와 달리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공식 채널을 통해 인민들에게 알려주지도 않을 만큼 한국과의 접촉에 소극적이었습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서울 중구 대한적십자사 서울사무소에서 열린 화상 상봉장 시연행사에서 전주·홍성·의정부에 거주하고 있는 이산가족들과 면담하고 있다. 통일부는 지난 8월 기존 이산가족 화상상봉장 13곳에 더해 의정부, 강릉·원주, 청주, 홍성,안동, 전주 등 7곳의 화상 상봉장을 추가로 설치했다. 2021년 9월 16일 동아일보.2025년 현재 이산가족 신청자는 13만 4천여 명, 이 중 생존자는 불과 3만 5천 명입니다. 이미 9만 9천여 명이 세상을 떠났으며, 생존자의 3분의 2는 80세 이상 고령층입니다. 상봉의 기회는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둘째 날인 25일 오후 단체상봉이 진행된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우리측 박춘자(77) 할머니가 북측의 언니 박봉렬(85) 할머니와 다가오는 작별의 시간을 준비하고 있다. 한편, 행사 마지막 날 진행되는 작별상봉은 남북 합의를 통해 기존 2시간에서 3시간으로 1시간이 늘어났다. 2018년 8월 15일.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이제 눈물까지 말라버린 이산가족들에게는 이번 추석 역시 고통스러운 시간일 것입니다. 한번이라도 다시 만났던 이산가족 중에는 ‘만나지 않았다면 오히려 좋았겠다’는 고통을 토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달 말 경주에서 APEC 회의가 열립니다. 이산가족들은 혹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이 만나고 남북 관계에도 변화가 생기는 0. 1%의 가능성을 믿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사진 속의 멍한 표정과 눈물이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더 늦기 전에 아직 살아 있는 남북의 가족들이 만날 수 있는 길이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사진에서 어떤 점이 느껴지셨나요? 그리고 혹시 여러분 주변에 이산가족이 있으시다면, 잔인한 세월을 견뎌 오신 그분들을 위로하는 시간을 가져보시는 건 어떨까요. 추석이 가족의 명절이라면, 이산가족의 날은 부재한 가족을 떠올릴 수 밖에 없는 시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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