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 일대에 상영된 미디어파사드 작품 ‘자니?’는 전통 회화 ‘일월오봉도’를 출발점으로 삼아 디지털 언어와 캐릭터적 상상력을 결합한 작업이다. 해와 달이 문자를 주고받으며 시작되는 신비로운 이야기를 그렸다. 전통 이미지를 경쾌하고 실험적인 감각으로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개인전을 마친 직후 참여한 이번 프로젝트에서 작가 추수는 광화문이라는 역사적이면서도 일상적인 공공 공간에 사적이면서도 보편적인 감정을 투사했다. 작품의 출발점부터 전통 이미지의 재해석, 장소가 작업에 미친 영향 등 작가 추수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광화문 프로젝트에서 선보이신 작품 ‘자니?’는 어떤 지점에서 출발한 작업인가.
“7개월간 국립현대미술관 추수 개인전을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고 나서 ‘미치도록 귀여운 작업을 하나 하고 싶다’라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 마침 서울라이트 광화문 제안이 들어왔고, 곧바로 프린세스 컴퓨터 풍의 ‘자니?’ 스토리보드를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 3개월간 과즙이 팡팡 터지는 작품을 끌어내는 데 몰두했다. 그렇게 ‘작가 추수’와 ‘프린세스 컴퓨터의 디렉터 추수’의 공놀이 안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자니?’의 한 장면. 작가 추수 제공 ㅡ이번 작업에서 ‘일월오봉도’는 단순한 인용을 넘어 작품의 중심 이미지로 기능한다. 이 전통 회화를 이번 작품의 주인공으로 삼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해와 달이 같이 떠 있는 ‘일월오봉도’에 담긴 숨겨진 이야기는 무엇인지 늘 궁금했다. 본래 의미보다는 회화적 구성에 흥미를 느꼈다. 일월오봉도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파도에서, 나무에서 요정들을 만날 수 있다. 그렇게 ‘믈’과 ‘나모’를 그려 캐릭터로 탄생시켰다. 비록 우리가 만들었지만, 너무 귀여워서 팀원들 전부 핸드폰 배경 화면으로 쓰고 있다.”
일월오봉도 원본. 작가 추수 제공
‘자니?’의 한 장면. 작가 추수 제공 ㅡ광화문이라는 장소는 역사성과 상징성을 지니는 동시에, 많은 사람이 스쳐 지나가는 일상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관객을 상상하며 신경 쓴 장면이 있나.
“종종 멀게만 느껴지는 예술이라는 영역은 사실 모두 우리 삶에 관한 이야기다. 핸드폰으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장면이나 핸드폰만 보다가 서로를 놓치고, 핸드폰을 떨어뜨리며 현실에서 만나게 되는 장면 등 우리 스스로를 비추는 모습을 담았다. 또 마지막에 ‘믈’이 “하나, 둘, 셋, 김치” 하며 일월오봉도를 찍어 완성하는 장면은 사실 관객들을 찍는 구도다. 분명 마주 보고 그 장면을 찍고 있는 관객들이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자니?’의 ‘나모’. 작가 추수 제공
‘자니?’의 ‘믈’. 작가 추수 제공
ㅡ작품 제목이기도 한 ‘자니?’라는 질문은 사적이면서도 보편적인 감정을 자극한다.
“‘자니?’라는 메시지는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감정을 건드린다. 그리움일 수도 있고, 설렘이나 애틋함, 혹은 후회일 수도 있다. 개인의 기억과 감정이 광화문의 ‘자니?’와 얽히고, 다시 경복궁의 ‘일월오봉도’로 확장되면서 오늘의 당신과 100년 전의 예술이 독특한 관계를 맺기를 바랐다.”
ㅡ작업에서 음악과 사운드를 중요한 축으로 다루고 있다. 이번 작품의 사운드 구성은 어떻게 접근했나.
“드로잉 단계부터 한국 전통음악과 모듈러 신디사이저를 결합하는 콘셉트를 떠올렸다. 이번에도 작곡가 마르텐 보스와 협업했다. 흔한 전통음악 재해석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음악이 탄생하길 바랐다. 음계는 ‘중임무황태’를 사용했지만, ‘아리랑’이나 민요처럼 익숙한 멜로디는 차용하지 않았다. 꽹과리, 북, 장구로 퍼커션을 만들고, 가야금으로 음계를 연주한 뒤 모듈러 신디사이저 사운드를 결합했다. 전통 회화를 현대 기술로 재해석하는 나의 문법을 음악에도 그대로 적용한 셈이다. 몇 달간 스튜디오에서 작업한 끝에 ‘이 음악이 광화문에 울려 퍼진다면’이라는 생각에 함께 환호했다.”
‘자니?’의 한 장면. 작가 추수 제공 ㅡ‘작가 추수’와 ‘프린세스 컴퓨터의 디렉터 추수’라는 두 정체성은 어떻게 공존하나.
“‘프린세스 컴퓨터’는 작가 추수의 무거움에서 도망치기 위해 만든 스튜디오였다. 그런데 오히려 그 경쾌함과 발랄함, 그리고 현실적인 수입이 작가 추수를 지금까지 버티게 했다. 두 정체성 모두 3D 그래픽 툴 블렌더를 기반으로 작업하기 때문에 기술적으로도 함께 성장한다. 서로를 지탱하는 버팀목 같은 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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