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의 포화 속에서 시작된 작은 꿈 하나가 있었다. ‘우리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제약기업을 만들겠다’는 꿈이었다. 1951년 창업주 故 김순기 회장이 삼남제약의 첫발을 내딛던 순간이다. 당시만 해도 국내 제약산업은 태동기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의약품을 수입에 의존하던 시절 창업주의 도전은 무모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창업주는 흔들리지 않았다. ‘우리 손으로 만든 의약품으로 국민 건강을 지키겠다’는 신념으로 하나하나 기틀을 다져나갔다. 6·25 전쟁 와중에서 시중에 흘러나오는 원료들을 구입해 원료부터 의약품을 만들어낸 최초의 제약회사라는 역사를 지켜 나가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 왔다.
투명 경영의 힘… 위기를 넘어 새로운 도약
충남 금산에 위치한 삼남제약 cGMP 인증 공장.김호택 회장이 경영 일선에 나서면서 삼남제약은 큰 변화를 맞이했다. 연간 60억∼70억 원이던 매출은 2024년 250억 원까지 성장했으며 올해는 5% 정도 성장을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김 회장이 가장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외형적 성장이 아닌 ‘투명한 경영과 영업’이다. 대기업과 같은 방식으로는 경쟁할 수 없고 우리만의 방식으로 신뢰를 쌓아야 한다는 소신에 따라 김 회장은 직원들에게 늘 강조한다. “투명한 경영과 영업, 74년간 쌓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우리가 잘하는 것을 더 잘해서 살아남자.”
삼남제약 주력 제품 ‘마그밀’.이러한 경영 철학은 과감한 결단으로 이어졌다. 130여 종에 달하던 제품을 40여 종으로 줄이고 그중에서도 경쟁력 있는 10여 종의 의약품에 주력했다. 그 결과 제산과 변비 치료에 탁월한 효능을 보이는 ‘마그밀’과 같은 대체 불가한 히트작이 탄생했고 삼남제약은 내실을 다질 수 있었다.
성장에는 필연적으로 도전이 따랐다. 2009년 연구소와 공장 시설 확충을 위해 150억 원이라는 대규모 투자를 결정했다. 부채가 없던 회사에 처음으로 큰 빚이 생긴 것이다.
“액수의 무게에 눌려 잠 못 이루던 날이 하루이틀이 아니었다”며 김 회장은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로 소아과 의사로 수련받던 레지던트 1년 차 시절과 함께 이때를 꼽는다. 하지만 전 직원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10년 만에 부채를 모두 상환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경험은 삼남제약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투명 경영이라는 원칙을 지키면서도 과감한 투자와 혁신을 통해 성장을 이뤄낸 것이다. 아울러 이 회사의 성장 전략에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원칙이 깔려 있다. 김 회장은 우수건강기능식품 제조기준(c-GMP) 시설 구축에 과감한 투자를 단행했다. 특히 수십 종의 제품군 중에서도 정제와 캡슐제 생산에 집중하며 전문성과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이는 오늘날 삼남제약이 제약업계에서 신뢰받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토대가 됐다.
아버지의 꿈을 잇다… ‘품질 경영으로 신뢰 쌓아’
삼남제약의 자동 포장 시스템 현장. 삼남제약 제공“선친께서는 늘 ‘의약품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생명을 다루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품질관리에는 한 치의 타협도 있을 수 없다고 하셨다.”
김 회장은 1999년 입사 이후 20여 년간 삼남제약과 동고동락해왔다. 그는 김순기 창업주로부터 경영을 배우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가치를 깊이 새겼다. 특히 ‘고향 사랑과 기업이 잘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성과를 사회와 나누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경영의 나침반으로 삼고 있다.
김 회장의 리더십은 위기 속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IMF 외환위기 때는 구조조정 대신 전 직원과 고통 분담을 선택했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고용을 유지하며 위기를 극복했다. 최근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는 방역 물품과 의약품을 지역사회에 적극 지원하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했다.
김 회장이 가장 공을 들인 것은 단연 품질 경영이다. 1992년 KGMP 인증을 시작으로 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 기준을 지속적으로 강화해왔다. 2009년에는 글로벌 기준인 cGMP 인증을 획득하며 세계적 수준의 품질 경영 시스템을 구축했다.
“의약품은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만큼 품질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나의 제품이 출하되기까지 여러 차례의 검사와 검증을 거치지만 그래도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노력은 생산시설 현대화로도 이어졌다. 최첨단 자동화 설비를 갖춘 GMP 공장에서는 필수 의약품 중심으로 생산하고 있다. 특히 HPLC, GC 등 최신 분석 장비를 도입해 품질관리의 정확성을 높였다.
나눔 경영으로 지역사회와 함께하다
김 회장은 창업주의 나눔 정신을 한층 발전시켰다. 충남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청소년과 지역, 어르신을 위한 지원에 노력하고 있고 금산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위원장으로 지역의 봉사원들을 지원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국제로타리에서 지구 총재, 한국로타리 지역재단 코디네이터 등의 역할을 수행했고 충남 사랑의열매, 대한적십자사 충남지사뿐만 아니라 대전상공회의소 등에서 부회장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기업은 홀로 성장할 수 없으며 지역사회가 있어야 기업도 존재할 수 있다. 창업주의 고향 사랑 정신을 이어받아 지역과 함께 성장하는 것이 진정한 기업의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삼남제약의 나눔 정신은 창업 초기부터 시작됐다. 김순기 창업주는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던 1950년대부터 지역 인재 양성을 위해 장학 사업을 시작했다. 삼남장학재단을 설립해서 당시로서는 적지 않은 50만 원의 장학기금을 마련했다. 그 이자로 매년 5만 원의 장학금을 모교에 전달하고 형편이 어려운 젊은 인재들의 대학 등록금을 지원해 주는 등 교육 발전에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충남대 약학대학에 발전기금을 전달하는 모습. 삼남제약 제공이러한 정신은 김 회장에게 고스란히 이어졌고 특히 지역 교육기관과의 상생 협력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19년에는 충남대 약학대학에 발전기금 1억5000만 원을 전달했다. 2006년 5000만 원 기부에 이은 두 번째 지원이다. 당시 충남대는 이 기금으로 세미나실 ‘삼남관’을 조성해 각종 학술 활동에 활용하고 있다.
김 회장은 “삼남제약과 충남대는 6·25 전쟁 중 설립돼 오랜 시간 지역과 함께 성장해왔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지역사회 발전과 인재 양성의 소망을 담아 기부를 결정했다”고 전했다.
교육계 지원 외에도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다. 김 회장은 2014년 1억 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 됐으며 기부금은 그의 모교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과 금산 지역 발전을 위해 지정 기탁했다. 모교인 연세대 의대에도 1억 원 이상 기부한 ‘에비슨클럽’ 회원이 됐다. 또한 국제로타리에 25만 달러(약 3억6000만 원)를 기부해 AKS 멤버로 가입하는 등 국제 사회공헌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금산문화원장 시절에는 금산인삼대종 건립 추진위원장으로 인삼대종 건립을 위해 4000만여 원을 쾌척하기도 했다.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활동도 남달랐다. ‘금산환경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창립 회장으로 10년간 재임했으며 금산문화원장도 8년간 지내며 지역문화 발전에 기여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20년 ‘자랑스런 충남인’에 선정됐으며 같은 해 연세대 의대에서 ‘에비슨봉사상’ 수상, 지난해에는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다. 김 회장은 특히 모교에서 받은 에비슨봉사상이 가장 자랑스럽다고 했다.
삼남제약의 나눔 활동은 단순한 기부가 아닌 창업 정신을 잇는 기업 문화로 자리 잡았다. 창업주부터 이어온 지역사회 공헌의 전통은 오늘날 삼남제약을 대표하는 기업 가치가 됐다.
특히 김 회장은 1920년생인 김순기 창업주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2020년 아버지 이름으로 충남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 원을 기부했고 3년 후 어머니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1억 원을 추가 기부했다. 김 회장은 충남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지정 기탁이 가능해 취약계층과 소외계층에 도움을 줄 수 있어 뿌듯하다며 앞으로도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나눔 활동을 지속해 나가겠다고 했다.
지역을 넘어 인류를 위한 실천도 앞장서고 있다. 김 회장은 환경보호 활동의 일환으로 ‘푸른 지구 만들기’ 캠페인을 통해 하천 정화 활동과 나무 심기를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있으며 폐의약품 수거·처리 캠페인으로 환경오염 예방에도 앞장서고 있다.
R&D 투자로 미래를 준비… 새로운 꿈을 향해 전진
김 회장의 시선은 이미 미래를 향해 있다.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R&D 투자를 꾸준히 확대해 나가면서 글로벌 시장 진출도 가속화하고 있다. 현재 동남아, 중남미 등 신흥국을 중심으로 수출을 확대하고 있으며 cGMP 인증을 바탕으로 글로벌 제약사들과의 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74년 전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 시작된 작은 꿈은 이제 글로벌 제약기업을 향한 큰 꿈으로 발전했다. 장수기업으로 성장을 지켜본 관계자들은 부친의 창업 정신을 굳건히 지켜온 김 회장의 역할이 매우 컸다고 입을 모은다.
“아버지께서 늘 강조하시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마음 깊이 새기고 있다. 앞으로도 R&D 투자와 품질 경영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면서 동시에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기업이 되도록 하겠다.”
삼남제약이 그리는 새로운 꿈이 기대된다. 창업주의 꿈을 이어받아 더 큰 꿈을 향해 도전하는 김호택 회장과 삼남제약의 미래가 더욱 주목받는 이유다.
“의약품은 생명 다루는 것… 창업 정신 되새기며 성장”
[인터뷰] 김호택 삼남제약 회장
김호택 삼남제약 회장.김호택 회장에게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창업주인 아버지 김순기 회장에 대한 깊은 존경심이었다. “‘의약품은 생명을 다루는 것’이라는 아버님의 가르침을 늘 가슴에 새기고 있다. 품질관리에는 절대 타협이 있을 수 없다는 그 말씀이 저의 경영 철학이 됐다.”
고향인 금산의 최고(最古) 향토기업이라는 사실과 충청남도에서 처음 시행한 ‘장수기업 대상’에 선정됐다는 자부심과 함께 책임감을 잊지 않으려 한다.
김 회장은 상속 과정에서 가업 승계 프로그램으로 가업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대를 이은 경영이 가능했다며 세무 당국에서도 흔하지 않은 사례라고 칭찬을 해준 것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미래를 향한 비전도 명확했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제약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국민건강 증진’이라는 창업 정신은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구체적인 전략도 제시했다. “앞으로의 재도약을 준비하면서 우리만의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수탁 판매 비중을 확대하고 다품종 소량 생산 방식으로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것이 그 방안이 될 것이다.”
현재 글로벌 시장 진출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도 숨기지 않았다. “수출 국가들의 기준이 점점 높아지고 인허가 절차도 복잡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도전은 우리의 경쟁력을 높이는 기회가 될 것이다. 당장은 수탁사업 강화를 통해 안정적인 성장 기반을 다지면서 동시에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역량도 꾸준히 키워나갈 계획이다.”
김 회장의 이러한 구상은 ‘현실적 도전’과 ‘미래 준비’라는 두 축을 균형 있게 고려한 전략으로 보인다.
김 회장은 투스텝이 아닌 ‘원스텝’의 생산 시스템이 이익 창출과 시장점유율로 이어져 왔다며 작은 발전이 쌓이면서 성장했고 74년 동안 한 우물을 파온 기업이라는 것에 자부심이 크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우리 임직원은 단순한 직원이 아닌 삼남제약의 가족이다”라며 임직원에 대한 감사도 말도 잊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그는 “우리나라가 제약 강국으로 도약하는 데 삼남제약이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것이 우리가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고 나의 꿈이기도 하다”며 “앞으로도 R&D 투자와 품질 경영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면서 동시에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기업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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