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액을 밝히지 않고 종이에 싸서 봉하여 주는 상금, 격려금, 기부금 따위를 이르는 명사. 사전이 설명하는 ‘금일봉(金一封)’의 뜻입니다.
관가에서는 대통령은 물론 장관을 비롯한 기관장급 인사들이 내부 부서나 직원을 격려하는 취지로 전달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데요.
오늘은 얼마 전 세종 관가에서 조용히 전해졌던 격려금에 얽힌 사연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 국세청, ‘교육세’ 놓고 대형 손해보험사들과 소송전
지난 연말 국세청에서는 한 사안에 국세청장과 서울지방국세청장이 잇따라 격려금을 전달해 관심을 모았습니다.
국세청이 교육세를 놓고 손해보험사들과 벌인 소송전에서 1, 2심 패소를 뒤집고 대법원 ‘파기환송’을 받아낸 일을 격려한 것인데요.
대법원 판결문을 보면 국내의 대형 손보사 6곳이 대형 법무법인과 함께 나선 소송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등법원의 2심 판결이 2021년 11월 25일. 대법원이 만 3년 만인 2024년 11월 28일에 원심 파기환송을 결정하면서 긴 소송은 국세청의 승리로 마무리됐습니다.
강민수 국세청장과 정재수 서울지방국세청장은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에 소송 실무를 담당했던 사무관급 직원들에게 격려금을 전달했다고 합니다.
국세청. 동아일보DB
● 대법원 “손해보험료 지급은 세금 계산 제외 안 돼”
세금과 소송. 복잡한 내용이지만 간략하게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금융·보험업자들은 일반적인 부가가치세 대신 벌어들인 돈, 즉 수입 금액의 0.5%에 해당하는 교육세를 부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보험의 경우 결국 보험 가입자에게 돌려주는 돈이 많다는 점을 고려해서 벌어들인 돈에서 공제해 주는 항목이 있는데요.
저축성 보험의 경우 보험금을 지급할 때 원금에 해당하는 금액에 대해서는 과세표준에서 공제해 세금을 물리지 않는 등의 내용입니다.
이번 소송은 이런 연장선상에서 일부 손해보험사가 상해나 질병 등으로 지급한 보험금도 교육세 계산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벌어졌는데요.
1, 2심에서는 공제 제도의 취지를 고려하면 손해보험사가 지급한 보험금도 공제하는 것이 맞다는 판결을 내렸지만 대법원은 법률상에 명시된 공제 항목으로 볼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대법원. 동아일보DB
● “소송 한 건으로 970억… 후속 소송·과세 고려하면 ‘수천억짜리’”
이 사건은 단일 사건만으로도 970억 원에 이르는 세금이 걸려 있습니다. 손해보험사들이 승소했다면 970억 원의 세금을 되돌려줘야 하는 셈인데요.
같은 쟁점으로 다른 소송들이 잇따라 제기돼 있는 데다 앞으로 동일한 공제를 적용해 주느냐 마느냐의 문제도 걸려 있으니 국세청으로서는 수천억 원 이상이 걸린 소송이었겠습니다.
정리해 놓고 보면 간단해 보이지만… 대형 손해보험사 및 법무법인과 1, 2심에서 이미 패소한 소송을 뒤집어야 하는 국세청의 입장은 사실 간단치 않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존과는 다른 과세 논리를 만들고 치밀한 법률적 준비로 이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과정에는 큰 노력이 필요한 것인데요.
대법원의 파기 환송률이 한 자릿수에 불과한 상황에서 어려운 일을 해냈다는 고마움을 국세청장과 서울지방국세청장이 함께 격려금이란 형태로 표현한 것으로도 볼 수 있겠습니다.
강민수 국세청장. 동아일보DB
● 기재부에선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에 부총리 격려금
이에 앞서 지난해 가을 기획재정부에서는 현재는 대통령 권한대행을 겸하고 있는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격려금 전달도 있었습니다.
지난해 10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스톡익스체인지(FTSE) 러셀은 1년간의 유예 기간을 거쳐 올 11월부터 한국을 WGBI에 추가한다고 발표했는데요.
기존 25개국에 이어 26번째로 ‘지각 편입’됐지만 한국이 단번에 세계 9번째 규모의 국채 투자처로 발돋움하면서 75조 원 이상의 투자금이 유입되고 결과적으로 국채 조달 금리를 떨어뜨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쾌거였습니다.
이 WGBI 편입을 위한 해외 투자자 설득 작업은 우리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 업무를 총괄하는 기재부 국고국 국채과가 맡았는데요. 편입 발표 이후 최 부총리의 격려금이 국고국에 전달됐다고 합니다.
격려금을 전달받은 국고국의 경우 국채과의 해외 출장비 지출이 급증하면서 부서 전체가 비용 지출을 ‘다이어트’해 간접 지원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꼭 필요한 격려금일 수도 있었겠습니다.
지난해 10월 9일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한국이 세계 3대 채권지수인 세계국채지수(WGBI)에 편입한 것과 관련해 브리핑을 하는 모습.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 격려금 뒤에는 공직자들의 ‘피땀눈물’
대법원 판결 이후에 만난 국세청 격려금의 주인공과 나눈 얘기 중에서는 “내 마흔두 살과 맞바꾼 소송”이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데요.
격무로 유명한 국세청에서도 유독 이 업무에 얼마나 많은 고민과 노력이 있었던 것인지가 느껴지는 얘기였습니다.
기재부의 WGBI 편입은 많은 출입기자들이 그 진행 과정을 옆에서 지속해서 취재한 사안이었는데요.
정부 차원의 누적된 노력으로 언젠가는 이뤄질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점을 1년이라도 앞당기는 ‘화룡점정’을 위해 ‘통역 없는 영어 대화 능력’까지 키우면서 전 세계를 누빈 공직자들의 노력을 옆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수선한 시국이지만, 올해 관가에서도 이렇게 ‘금일봉’ 받을만한 일들이 여러 건 만들어지길 기대해 봅니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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