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간 경계가 모호해지는 ‘빅블러(Big Blur)’ 시대에 국내 금융회사들이 규제로 인해 비금융업을 충분히 영위하지 못하면서 금융업 경쟁력 전반이 약화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한상공회의소는 210개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금융회사의 비(非)금융업 영위 현황과 개선 과제’를 조사한 결과, 응답 금융회사의 88.1%는 해외 금융회사 및 빅테크 기업과의 경쟁에서 비금융업 진출을 막는 국내 칸막이 규제가 금융업 경쟁력에 불리하다고 응답했다고 11일 밝혔다. 또 응답사의 71.5%는 비금융업종도 함께 영위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
대한상의에 따르면 미국 JP모건체이스의 자회사 체이스은행은 여행 플랫폼 ‘체이스 트래블’을 출시해 신용카드업과 시너지를 창출하며 2023년 미국 5위 여행사로 성장했다. 모건스탠리 그룹도 2019년 이후 4개의 헬스케어 기업을 직접 인수해 해당 분야의 인수합병(M&A) 추진 및 자문 등을 선도하고 있다.
이런 비금융업 투자가 가능한 이유는 규제 개선 노력에 있다고 대한상의는 설명했다. 미국은 은산분리 원칙이 있으나 1999년 시행된 금융현대화법에 의해 은행지주회사 중 일정한 자본적정성 등을 갖춘 금융지주회사들은 금융업을 보완하는 비금융업무를 직접 영위할 수 있게 해줬다.
일본 역시 2016년 은행법 개정을 통해 핀테크기업에 대한 출자제한을 완화했고, 부수 업무 범위를 계속 확대하면서 은행들이 지역상사와 광고업, 인력소개업 등 다양한 업종에 진출하고 있다. 인력소개업을 통해 지방 구인난에 기여하고 있는 일본 히로시마 은행과 아키타 은행, 지역 특산품 유통에 나선 호큐쇼은행과 아와은행 등이 그 사례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여전히 금융-비금융 간 칸막이가 높은 상황이다. 국내 금융지주회사는 비금융사 주식을 5% 이내로만 소유할 수 있고, 자회사 경영관리 등을 제외하고는 영리 목적의 다른 업무를 영위할 수 없다. 또 은행·보험회사의 경우 비금융사에 대해서는 15% 출자제한이 걸려 있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우리나라는 금융권의 비금융업 영위가 원칙적으로 제한되고 예외적으로만 허용되고 있어 금융산업 성장이 제한적이고 글로벌 금융회사 역시 없다”며 “그동안 제조업과 기술 개발 중심이었던 우리 경제는 앞으로 기술과 금융의 역할이 융합된 성장을 하기 위해 금융산업의 발전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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