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우수한 수학 실력을 가진 학생들이 많고 교육 과정도 훌륭합니다. 양자 이론과 같은 학문적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7일 인천 연수구 연세대 국제캠퍼스에서 열린 ‘양자퀀텀위크’ 콘퍼런스 참석차 방문한 리처드 조사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본보 인터뷰에서 이 같이 말했다. 그는 “양자컴퓨터가 빠르게 개발되고 있지만 이럴 때일수록 기초 학문에 대한 투자를 놓치면 안된다”며 “순수 학문을 놓치면 향후 양자컴퓨터 개발에서 중요한 위기를 맞닥뜨렸을 때 학문적 아이디어가 부족한 상황에 놓일 것”이라고 했다.
조사 교수는 양자 시대의 ‘첫 시작점’을 열었다고 평가되는 세계적 석학이다. 양자컴퓨터의 기본적인 계산 원리를 수학적으로 증명한 ‘도이치-조사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1992년 국제학술지 영국왕립학회저널에 발표된 도이치-조사 알고리즘 논문은 현재까지 4000회 이상 인용된 양자학계의 ‘스타 논문’이다. 도이치-조사 알고리즘이 기폭제가 되어 지금의 암호 체계를 무너뜨릴 수 있는 양자 알고리즘인 ‘쇼어 알고리즘’ 등이 등장하면서 양자컴퓨터 개발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30여 년이 지난 현재 IBM, 구글 등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양자컴퓨터 개발에 뛰어들며 상용화가 5여 년 앞으로 다가왔다. 조사 교수는 “양자컴퓨터의 상용화 시기를 예상하기는 어렵지만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며 “다만 그 전에 양자컴퓨터와 고전컴퓨터가 결합한 ‘하이브리드 컴퓨터’를 개발해 먼저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이브리드 컴퓨터 개발을 서두르는 이유는 양자컴퓨터가 산업계에 미칠 영향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현 단계의 양자컴퓨터는 연산 시간이 짧고 오류가 많아 쓰임이 제한적이다. 기존 컴퓨터와 연결해 이런 문제점을 보완하면 보다 빨리 산업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사 교수는 양자컴퓨터를 활용할 경우 여러 산업 분야 중에서도 특히 의학에서 큰 혁신이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양자컴퓨터의 핵심은 분자 이하 단위 시뮬레이션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약물이 체내 환경에서 다른 단백질 등과 어떤 상호작용을 하는지 예측하려면 양자 시뮬레이션이 필요하다. 조사 교수는 “분자의 움직임이나 단백질의 구조를 예측하는 시뮬레이션은 너무 복잡해 기존 컴퓨터는 계산이 불가능하지만, 양자컴퓨터는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세대는 이런 이점을 보고 국내 최초로 IBM의 양자컴퓨터 ‘시스템 원’을 도입하고 바이오에 특화해 활용할 계획이다.
조사 교수는 양자컴퓨터의 가능성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강조했다. 미래 과학 인재들의 ‘양자 문해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최근 인공지능(AI)을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인 ‘AI 리터러시’가 강조되는 것처럼, 양자도 문해력이 뒷받침돼야 인재 양성부터 산업계 적용까지 전방위적인 발전이 가능하다. 조사 교수는 “아직 양자에 발을 들이지 않은 젊은이들의 두뇌와 창의력이 결국 이 분야의 승패를 결정할 것”이라며 “양자 문해력을 높여 인재들이 자연스럽게 양자를 접하고 배울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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